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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Oct 22. 2023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36)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115. 너의 젖꼭지는 양귀비 잎 같다


한 비유에는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비진실이 담겨 있고, 이 둘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만일 비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거기다 감각적 형태, 즉 현실적 형체를 부여하면 꿈과 예술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것들과 실질적인 현실 삶 사이에는 유리벽이 놓여 있다. 만일 비유를 합리적 오성으로 분석해서 맞지 않는 것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으로부터 분리하면 진실과 지식이 생겨나고, 반면에 감정은 파괴된다. 인간 족속은 유기물을 둘로 나누는 박테리아 종처럼 비유의 살아 있는 원초적 상태를 현실과 진실의 단단한 물질, 그리고 예감, 믿음, 인공물의 유리 같은 비현실, 이 둘로 쪼개버린다. 그 둘 사이에 세 번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별 고민 없이 시작했는데, 뭔가 막연하기만 했던 것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가 얼마나 많던가!
-393


비유는 인간관계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수는 무척 제한적일 것이다. 문학이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되는 점은 문장에 담긴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성을 충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비유는 괜한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비유와 직설을 상황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 <특성 없는 남자>는 비유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능성 인간인 울리히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도 비유이다.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가진 사람이 적절한 비유를 활용할 때 듣는 사람의 생각도 넓어지는 느낌이다. 문해력이 줄어드는 현상은 아마도 비유를 합리적 오성으로 분석하기 때문은 아닐까.


116. 삶의 두 구루 나무, 그리고 정확성과 영혼의 세계사무국에 대한 요구


“두 분께서는 독일에 우호적인 흐름도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시는 것 같군요.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의 운동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질 거라고 합니다. 평행운동이 독일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시위죠. 각하께서는 빈의 백성들이 거리에 나오는 것을 보시게 될 겁니다. 그들은 비스니츠키 남작을 임명하신 것에 항의할 텐데, 투치 국장님과 아른하임 두 분은 서로 은밀하게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각하에 대해선 평행운동을 통해 독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404


울리히가 한스 제프를 통해서 평행운동에 대한 반대 시위가 있을 거란 예감을 이야기한다. 그 방아쇠는 어떤 보직의 임명에 대한 것으로 시작한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현상을 보면서 인간의 사유와 행동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정치인의 의도와 민중의 판단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할 수 있다.


‘이 우주는 폭력과 사랑에서 생겨났다. 우리가 흔히 이 둘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대립적 관계는 잘못되었다!’
-409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 중에 어떤 것 더 크게 작용할까? 한 가지만 선택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우린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부러움이나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격투 경기를 보고 스포츠를 통해서 대리 만족하는 마음은 어떤 감정에 기인한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울리히가 에세이즘, 가능성 감각, 좀스러운 정확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상상의 정확성이라 불렀던 것들, 그리고 그 밖에 우리는 역사를 발명해야 하고 세계의 역사 대신 이념의 역사를 살아야 하고 실현될 수 없는 것을 장악해야 하고, 급기야 한 인간이 아니라 마치 모든 비본질적인 요소가 생략된 소설 속의 인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요구, 이 모든 것들, 즉 이례적인 극단화 속에서 현실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 모든 견해에는 명백하고 무자비한 열정으로 현실에 영향을 끼치려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410


울리히는 어릴 적 나폴레옹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다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나폴레옹을 말을 타고 가는 세계의 정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울리히도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는 욕망이 강했던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저마다 다르게 정의 내리지만, 현실에 영향을 끼치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하다 못해 가까운 사람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도 관찰되는 그런 욕망 말이다.


이제 울리히가 되돌아보니 이 불가능한 결합은 결국 문학과 현실, 비유와 사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 관계로 표현되곤 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불현듯 이 모든 것이 최근에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과 나눈, 목표 없이 뒤엉킨 대화 중에 우연히 떠오른 영감보다 훨씬 의미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유와 명쾌함이라는 이 두 가지 기본적 행동방식은 일찍이 인류의 시작부터 구분되어 왔기 때문이다. 명쾌함이란 논리학의 필연적인 결론 속에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의 의지를 단계적으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협박범의 뇌 속에 있는 사유와 행위의 법칙으로서, 상황이 명쾌하지 않으면 모든 걸 그르칠 수 있다는 삶의 궁여지책에서 생겨난다. 반면에 비유는 꿈속에 등장하는 영상들의 결합인데, 예술과 종교의 직관 속에서 사물들 간의 동족 관계를 드러내는 영혼의 매끄러운 논리학이다.
-411~412


비유를 이야기하는 문장도 참으로 근사한 비유를 사용한다. 영혼의 매끄러운 논리학이라니. 적절한 비유와 리터러시. 어쩌면 가장 쉽게 영혼을 채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집단으로 잘 뭉친다. 복종은 개인의 신념으로는 오랫동안 할 수 없었던 것을 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들의 적대성은 인간들에게 결코 멈추지 않는 피의 복수를 서로에게 선사한다. 반면에 사랑은 무척 빨리 시든다. 이것은 인간이 선하냐 악하냐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이 고결함과 비천함의 감각을 잃어버린 것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정신을 불신한 나머지 오히려 정신의 치장을 과하게 하는 것 역시 이러한 상실의 또 다른 모순투성이 결과일 뿐이다. 세계관과 그것의 극히 일부만 수용할 수 있는 활동(예를 들어 정치)의 연결, 모든 관점을 즉시 하나의 입장으로 만들고 모든 입장을 하나의 관점으로 치부하는 일반적인 강박증, 얻게 된 인식 한 가지를 거울 방 같은 곳에서 무한히 반사시키려는 온갖 광신자들의 욕구, 널리 퍼져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은 각각이 원하는 모습, 즉, 휴머니즘의 추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의 부재를 의미한다.
-413


개인으로 있을 때 보다 집단으로 있을 때 목소리가 더 커진다. 물리학의 운동의 법칙이 중력과 가속도와 다르게 인간은 집단을 이룰 때 힘이 더욱 커진다. 각종 권모술수로 적을 분열시키려는 행위에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뭉치는 것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는 모순적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오늘날 인생의 의미를 복원하는 걸 사명감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개인적인 견해만이 아니라 진실을 얻을 수 있는 순간에 사유를 경멸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무궁무진한 견해를 이끌어내야 할 순간에도 그냥 손쉬운 결론이나 어중간한 진실을 선택해버리고 맙니다!
-416


단순함이 복잡함을 이기는 순간이 많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우린 얼마나 손쉬운 선택을 하게 되는가. 단순한 선택이 초래하는 결과를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얼버무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며 살았고, 또한 그게 자신에게 이르는 믿을 만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뿌리를 잃고 혼란스럽게 흔들리는 오늘날에는 영혼을 복원할 때도 당연히 수공업의 전통을 공장의 이지력으로 대체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여기 높으신 분의 입에서 가끔 실수로 튀어나오곤 하는 놀라운 대답들 중 하나였다.
-418~419

라인스도르프 백작의 말은 민중의 삶은 개척의 삶보다 주어진 듯한 환경 속에 적응하는 삶이었다는 이야기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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