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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Nov 18. 2023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4)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9. 울리히와 대화를 나누지 않을 때의 아가테


아가테는 책을 많이 읽었지만 천성적으로 이론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자신의 경험을 책이나 연극 속의 이상적인 모델과 비교하면서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자신은 덫에 걸린 야생동물처럼 남자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지는 않은 것이다.
-99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간접 경험이다. 책의 내용과 자신의 경험을 비교하는 연습은 매우 유용하다. 나아가 다른 경우를 상정한 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10. 스웨덴 성채로 이어진 소풍. 다음 단계의 도덕


이 시골 언덕을 지나다니던 바람들도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말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106


남매의 대화를 듣는 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등산 중에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 문장이 문득 생각났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 바람도 우리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거야!라고 말해버렸다.


행위에 성격을 부여하는 건 인간이야.
-106


심지어 강아지의 행동을 보면서도 인간은 그 행위에 성격을 부여한다. 상대의 입장을 추측하는 것에 장단점이 있지만, 섣부른 판단은 소통의 오류를 만들 뿐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선하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할 수 없다고 믿길 좋아해!
-107


그렇다. 믿길 좋아할 뿐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삶의 무게,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고, 이 모든 게 결국은 한순간이고 덧없이 지나가버릴 거라는, 우리를 남몰래 짓누르는 이 언짢은 기분은 원래 그런 순간에나 생겨나지!
-110


허무주의를 경계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통제 불가능한 일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과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집착해도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현재에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뀔 뿐이다.


실행력을 가지는 건 간단하지만 그 행위의 의미를 찾는 건 무척 어려워! 오늘날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때문에 행동하는 인간은 나폴레옹의 몸짓으로 아홉 개 목조 핀을 쓰러뜨릴 수 있는 볼링 선수와 비슷해.
-117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개인으로 파편화된 세상 속에서 행위의 의미를 찾는 것 어렵다. 상태를 이해해야 하고, 상황적 지식을 알아야 겨우 조금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인정해야만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헤겔이 세계의 정신이라 불렀던 나폴레옹도 역사에서 몇 페이지를 장식하는 존재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개인의 행위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덧없다는 것은 언젠가 잊히는 것이라는 <어린 왕자>의 문장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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