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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Nov 25. 2023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5)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11. 성스러운 대화. 시작


도덕은 영혼과 사물을 포괄하는 질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측면에서도 삶의 의지가 아직 무뎌지지 않은 젊은이들이 도덕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반면에 울리히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그 연배의 경험을 지닌 남자라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 남자들은 직업적으로만, 그것도 자신들의 전문용어로만 도덕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고서는 ‘도덕’이라는 말은 일상의 삶에 잡아먹혀 더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울리히가 도덕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깊은 무질서를 의미했고, 울리히에게 동조한 아가테도 똑같이 거기에 이끌렸다.
-126~127


울리히와 아가테가 철학에 관한 대화를 한다. 도덕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전문용어로만 도덕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말과 연결된다.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더하고 사명감을 느끼려면 해당 분야의 언어로 도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면에는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을 포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지만 말이다.


“선하다는 건 좋은 거 아니에요?” 그녀가 물었다. 눈 속에는 예전에 아버지의 훈장과 관련해 일을 벌일 때와 비슷한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분명 모든 사람이 좋다고는 판단하지 않을 수상한 눈빛이었다.
“네 말이 맞아.” 울리히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본래의 의미를 다시 느끼려면 일단 그런 명제를 만들어봐야 해! 아이들은 단것만큼이나 선한 걸 좋아하지……”
“악한 것도요.” 아가테가 보충했다.
“선하다는 건 어른들의 열정에 속할까?” 울리히가 물었다. “그건 어른들의 원칙에 속해! 어른들은 선하지 않아. 선한 것은 좀 유치해 보이거든. 그래서 그저 행동을 선하게 할 뿐이야. 선한 인간은 선한 원칙을 갖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정말 구역질날 정도로 혐오스러울 수 있다는 건 정말 공공연한 비밀이지!”
“하가우어를 봐요.” 아가테가 거들었다.
“그런 선한 사람들 속에는 부조리한 역설이 숨어 있어. 그들은 하나의 상태에서 도덕적 명령을, 하나의 은총에서 규범을, 하나의 존재에서 목표를 뽑아내! 선한 사람들의 가정에는 평생 먹다 남은 찌꺼기만 남아 있어. 과거 언젠가 열렸던 성대한 잔치에서 남은 찌꺼기라는 소문만 꾸준히 나돌아! 이따금 과거의 몇몇 미덕이 새로 유행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자마자 곧 신선함을 잃어버려.”
-128~129


칸트의 정언명령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선한 마음으로 선한 행동을 하는 것. 어떤 이의 말처럼 재미는 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악한 행동보다 훨씬 낫다. 선행을 위한 선은 위선적일 수도 있다. 태어난 것은 선택이 아니지만, 선하게 살다 가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건 거울같이 비추는 넓은 수면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해. 눈은 어둠을 본다고 생각해. 그만큼 모든 게 밝아. 건너편 물가에서는 사물들이 땅에 서 있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아. 그것도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울 정도로 또렷이. 이 인상 속에는 상실과 상승이 함께 있어. 우리는 모든 것과 연결되면서도 아무것에도 다가갈 수 없어. 너는 여기 서 있고 세계는 저기 서 있어. 초자아적으로, 초대상적으로. 그러나 둘 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명료해. 평소에는 섞여 있던 것을 이렇게 분리하고 연결하는 것은 눈부시게 빛나는 어둠이자, 흘러넘치는 동시에 소멸하는 것이자, 안팎으로 흔들리는 무언가야. 너희는 물속의 물고기나 공중의 새처럼 헤엄쳐. 물가는 없어. 나뭇가지도 없어. 이렇게 유영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134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까?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의 방향은 올바른 방향이길 희망한다.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상대적이지도 않다. 시대마다 달랐고 처한 환경마다 달랐다. 믿음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이왕이면 잘 살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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