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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Dec 12. 2023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7)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특히 그 체험을 자체의 고유한 방식으로 다루어야 할지. 아니면 이성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155


상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단편적으로 이야기할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부분으로 이야기할지 고민할 때가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상태를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을 뿐인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울리히는 그들이 말한 체험들을, 마치 사고의 독특한 변화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고 대신 초인적인 사고가 들어서는 것처럼 해석하는 못된 장난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신적인 깨달음이라 부르건 근대풍에 따라 그냥 직관이라 부르건 그는 그것을 현실 이해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겼다. 그의 확신에 따르면 꼼꼼한 검증을 버티지 못하는 환상에 굴복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것은 공중에서 녹아내리는 이카로스의 밀랍 날개와 같을 뿐이라고 그는 소리쳤다. 우리가 단순히 꿈속에서만 날고 싶은 게 아니라면 금속 날개로 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157


울리히의 이야기처럼 상상만으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과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것과 실현 가능한 것의 차이를 인지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해석하는 데에 시간을 보낸다면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40년 전 만화에서 봤던 손목시계로 상대와 전화를 하는 장면을 지금은 현실에서 하고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기까지 수많은 호기심과 실험과 도전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 우물처럼 차단해 버렸는데도, 남아 있던 그 섬뜩한 기적의 물방울이 우리의 이상에다 타들어가듯 구멍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런 이상들 중에 우리한테 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없어. 한결같이 있지도 않은 것을 가리키지. 그 점에 대해선 우리도 오늘 충분히 이야기했어. 우리의 문화는 ‘무방비한 망상’이라 불리는 것들의 사원이면서 동시에 보호소이기도 해. 우리는 스스로가 과잉에 시달리는지, 아니면 과소에 시달리는지 모르고 있어.
-160


과학에 자리를 내어준 종교가 다시 한번 생각나는 문장이다. 오늘날 과학은 사랑에 빠진 감정조차 뇌에 가해지는 전기적 충격이라고 이야기할 테지만, 인간이 이성적이면서도 얼마나 감정적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과 극도로 이성적인 인간을 둘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도 없다. 사람은 때론 이성적이고 때론 감정적이다. 모순 속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내가 무엇을 믿는지 궁금하다고 그랬지? 그래, 난 우리의 도덕 규정들이 모조리 야만적인 사회에 대한 고백이나 다름없다고 믿어.
또한 그중에 옳은 것은 없다고 믿어.
그 규정들 뒤에는 다른 의미가 타오르고 있어. 그것들을 녹여 다른 형태로 만들어낼 불꽃이.
나는 어떤 것도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어.
균형을 이루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일단 서로를 지렛대로 들어 올리려 한다고 믿어.
내가 믿는 건 그런 거야. 난 그렇게 타고났어. 아니면 그게 나처럼 타고났든가.”
-163


균형을 이루는 것이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사람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법률이나 규정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면 울리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이 존재할까?


너는 내게 무엇을 믿느냐고 물었어! 난 사람들이 합당한 근거를 대며 어떤 게 선하거나 아름다운지 수없이 증명할 수 있다고 믿어.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따르는 유일한 신호는 그것에 가까워졌을 때 내가 상승하느냐 가라앉느냐야.
그게 내 생명을 깨울까, 깨우지 않을까?
내 혀나 뇌만 그에 대해 말할 뿐일까, 아니면 내 손가락 끝의 찬란한 전율이 말하게 하는 것일까?
물론 나는 이런 것들을 하나도 증명할 수 없어.
-164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나오는 문장이 떠오른다. 완전성이 상승할 때 느끼는 감정과 완전성이 하강할 때 느끼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다. 기쁨이나 슬픔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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