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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Dec 16. 2023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8)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13. 울리히는 돌아가고, 자신의 그사이 놓친 걸 장군으로부터 알게 되다


“나는 각료회의의 일원이오. 회의에서는 각자 자기가 원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걸 제안하고, 그러다 마지막에는 누구도 진정 바란 적이 없는 것이 도출되오. 그게 결론이 되고. 당신이 내 말을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재주는 없소.”
-175


회의뿐 아니라, 사람은 자신이 원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며 산다. 간혹 어떤 이는 자신은 별 주장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동의나 불만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사실 소통한다고 착각하지만, 자기 이야기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주장을 무조건 반박하려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차선으로 다른 의견이 채택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은 것에 만족하면서 돌아선다. 결국 이러한 경우에는 그야말로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시간이 지난 후에 한심한 선택에 후회를 하게 된다.


지성회의에서 사람들이 말해요. 시대에 새로운 정신이 깃들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년 안에는. 그전에 특별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정신에는 생각이 많이 담겨서는 안 된다. 이제는 감정도 시대에 맞지 않다. 생각과 감정, 이건 할 일 없는 사람에게나 어울릴 뿐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시대정신은 행동의 정신이라는 겁니다.
-178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말이 있다. 시대의 새로운 정신은 누군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염병처럼 번져나가 누구나 자신도 그러한 증상을 겪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14. 발터와 클라리세에게서 새로 일어난 일. 한 떠돌이 공연자와 관객들


“마인가스트 같은 사람과 교류하게 되면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타인에 대한 혐오감으로 괴로워했는지 깨닫게 돼!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러니까 뭐랄까, 회색은 사라지고 모든 게 천연색으로 나타나는 느낌이야.”
-185


살아가며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커다란 축복이다. 일생동안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 깨달음은 깊이 있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질문에 지치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해답을 정해버릴 때도 있다. 질문을 견디는 것은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이다. 아마도 클라리세는 자신의 질문에 지쳐 마인가스트의 이야기를 해답이라고 믿어버린 모양이다.


“세상에는 늘 죄악의 양과 미덕의 양이 존재해. 게다가 그 둘을 필요로 하는 양도 있고!”
-185


'현대는 모순 속에 흘러가는 전체이다.'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누군가에게는 선이 누군가에겐 악이 될 수 있다. 전체가 사라지고 개성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잡음이 수없이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경탄이란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다. 개인의 삶에서는 단순히 ‘발작’과도 같은 것으로 국한된다면 집단의 삶에서는 항구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185


한 개인의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집단으로 번지면,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고 스티브 잡스가 고안한 스마트폰은 전 세계의 문화를 바꿔버렸다.


마인가스트에 대한 경탄은 결코 순수하고 건전한 감정이 아니었고, 발터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히려 마인가스트에 대한 믿음에 자신을 맡겨버리려는 과도하게 자극적인 욕망이었다. 이 경탄 속에는 고의적인 면도 있었다. 그것은 전적인 확신 없이 미친 듯 표효하는 ‘피아노 건반의 감정’이었다.
-186


질문에 지친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이나 아주 단순한 선택을 하게 된다. 클라리세를 옆에서 지켜보던 발터도 함께 지친 모양이다. 고의적인 경탄에 동조하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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