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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Dec 23. 2023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9)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과학 외에 거의 모든 것을 우린 그저 예감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건 열정과 조심성이 필요한 일이지.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영역의 방법론은 삶의 방법론과 거의 비슷해. 그런데도 너희는 마인가스트 같은 사람한테 바로 ‘믿음’을 바쳐! 모든 사람이 그래. 하지만 그 믿음이란, 알지 못하는 내용물을 까보려고 알이 담긴 광주리 위로 너희의 귀중한 몸과 마음을 내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재앙이야!”
-187


울리히는 과학으로 증명하는 것 이외의 것에 믿음을 보이는 행위는 위험하다고 이야기한다. 불확실에 관한 믿음은 위험을 동반한다. 삶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이야기에 현혹되기 쉽다. 기대고 싶은 마음이 강할 때 거짓을 판명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듣고, 유리하게 해석하고 싶어지는 때엔 이미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지식의 확실성과 예감의 안개 사이 어딘가에 자기 자리를 요구하는 믿음의 이 영역이 얼마나 황량한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187


직관과 예감은 어떻게 다를까? 예감을 믿는 사람의 이야기와 직관으로 판단하는 사람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 같다. 울리히의 말 대로 확실성과 안개라는 비유가 깊게 와닿는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오직 야심에서만 실질적인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그는 반신반의했다.
-196


행복에 관한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한 실질적인 기쁨은 순간이라고 할지라도 행복과 많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욕망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을 얻었을 때 주어지는 기쁨의 감정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욕망하는 것을 얻었을 때의 기쁨이 더욱 크지 않을까? 물론 어떤 행복의 감정도 지속되지 않지만 말이다.


가만히 보면 인간은 어려운 사유보다 기발한 사유를 더 좋아하는 법이다.
-197


기발한 사유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권태에 빠진 인간에게는 어려운 사유보다 기발한 사유가 훨씬 더 재미있게 다가올 것 같다. 그러나 지적호기심이 강한 사람이 어려운 사유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면 기발한 사유보다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성적인 것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스승이 말했다. “실제로는 시대의 욕망이 펄쩍펄쩍 뛰는 숫염소 놀이에 불과할 뿐인데.” 그러고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울리히의 말을 들으면서는 불쾌감에 움찔했던 클라리세는 마인가스트의 말을 통해서는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어디가 앞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200


깨달음도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이야기나 현상에서도 그 해석은 무수히 쏟아진다. 감정이 격한 상태의 클라리세와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가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각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자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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