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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Dec 25. 2023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10)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15. 유언장


인간의 가장 고결한 상태에는 선과 악이란 없고, 믿음이나 의심만 있을 뿐이다. 확고한 규칙은 도덕의 내밀한 본질에 위배되고, 믿음은 기껏해야 한 시간밖에 가지 않는다. 믿는 상태에서는 어떤 비열한 짓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예감이 진리보다 열정이 넘치는 상태라고 말이다.
-208


개인의 이성과 감정의 싸움에서 이성이 이길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인간은 자신의 관심사와 믿고 있는 부분에 관해서 얼마나 편파적인 상상을 하게 되는가? 시간이 지난 후에 분홍빛 꿈에 빠졌던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이 최고로 고조된 열정은 어떠한 진리보다 순간의 힘이 강할 수 있다.


어떤 음식도 펄펄 끓인 뒤 바로 먹을 수는 없다. 아무리 심한 과장이라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면 거기서 차츰 새로운 평균이 나오는 법이다.
-211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관념은 각자의 인식 안에 내면화가 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질서보다 개성이 중시되는 경향의 시대엔 새로운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처음에 거부감이 있던 의상이나 음식 등이 여러 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 새로운 평균이 되어버린다.


아가테는 자신에게 일어나거나 자신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을 아무렇게나 다루는 경향이 농후하고, 실제 삶과 나란히 동행하는 판타지 속에서 매우 애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그녀가 그렇게 오래 하가우어와 살았으면서도 하루아침에 그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동생이 미래를 경솔하게 다루는 것도 그 추측에 부합했다.
-213


MBTI에서도 T(분석적 태도)와 F(감정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각각 다른 현상을 보인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대하는 방식에서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과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아가테는 감정적인 태도의 소유자가 아닐까 추측이 되는 문장이다. 이를 자신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울리히는 아무래도 분석적 태도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껏 의견 일치를 본 모든 것에 따르면, 너는 이제 그 바다를 수정처럼 순수하고 영속적인 사건들로 가득 찬, 움직임 없는 은둔의 상태로 상상해야 돼. 어떤 시대건 지상에서의 그런 삶을 상상하려고 노력해 왔어. 그것이 천년제국이야. 우리가 아는 어떤 형태의 제국도 아닌. 오직 우리 자신에 의해 그 형태가 만들어지는 제국이지! 우리는 그렇게 살 거야!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재물이나 지식, 연인, 친구, 원칙,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조차 연연하지 않을 거야. 그런 연후에야 우리의 감각은 열리고, 인간 및 동물과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우리가 더는 우리로 남지 않고 오직 모든 세계와 어우러짐으로써 우리를 유지하는 그런 방식으로 펼쳐지게 될 거야!”
-214~215


3부의 소제목인 천년제국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울리히가 말하는 천년제국이란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상상한다. 모든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삶 속에서도 인간은 결국 새로운 기쁨을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결국 인간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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