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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Dec 30. 2023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11)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16. 외교적인 디오티마 남편과의 재회


생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하죠. 우리가 의식적인 행위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반사궁을 통해 유입되었다가 유출되는 자극의 결과가 아니라 우회로로 갈 수밖에 없는 자극의 결과다. 그럴 경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와 우리가 행동하는 세계는 설령 우리 눈에 동일하게 비치더라도 실은 물레방아 위와 아래에 있는 물과 비슷하고, 일종의 정체된 의식의 저수지를 통해 연결되고, 유입과 유출의 조절은 그 저수지의 수위와 동력, 그 밖의 다른 요소에 좌우됩니다. 달리 말해서, 만일 유입과 유출 둘 중 하나에 이상이 생기면, 즉 세계에 거리감이 생기거나, 행동할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으면 그를 통해 좀 더 높은 두 번째 의식이 생성될 수 있다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하다.
-222


과학이 이야기하는 생각은 전기 자극이다. 그러한 자극은 보고 듣고 인식한 것에 의해 좌우된다. 사람의 생각의 크기라는 것은 사실상 측정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다. 뇌에 들어오는 자극에 따라 순간에 변하기도 하고, 켜켜이 쌓인 퇴적암처럼 잘 변하지 않는 생각도 있다. 마음이라고 하는 인간의 감정은 뇌에 주는 자극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굳은 결심도 그날의 감정상태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의식이 거의 작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행동을 습관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감정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습관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선하게 살다 간 사람이 좋은 습관에 관하여 강조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17. 디오티마가 읽는 책을 바꾸었다


행동에는 말에 대한 훌륭한 비관주의가 깔려 있어요. 과거에는 항상 말만 했다는 사실을 우리 부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영원하고 위대한 말과 이상을 위해 살았어요. 인간적인 것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우리의 가장 내밀한 특성을 위해, 생을 더욱 충만하게 하기 위해 살았죠. 또한 우린 종합을 추구했고, 새로운 미적 향유와 행복의 새로운 기준을 위해 살았어요. 진리 자체가 되려는 엄청난 의지에 비하면 진리 탐구라는 것은 어린애 장난 같다는 생각을 부인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현재 영혼 속에 현실이 지극히 빈약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지나치게 욕심을 냈어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그저 꿈같은 갈망 속에서 살았죠!
-233


영원하고 위대한 말과 이상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말한다.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차이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안 된다. 못한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언어에 갇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생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 우리가 바꾸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이다.


과거의 고통은 현재의 고통에 비하면 천진난만한 오랜 친구 같기에, 이제는 오히려 어릴 적의 친숙한 기억처럼 느껴지는 장점이 있었다.
-235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이 의외로 많다. 사안에 따라서 시간이 지나도 결과가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부질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더라도 10년 전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행복했던 일을 기억하는 경우가 드물다. 인간은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망각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한 시인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운명으로 엮이는 것만큼 절망스러운 일은 없다.
-239


두말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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