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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Jan 07.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12)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18. 편지 쓰길 어려워하는 도덕주의자


일례로 그는 자신이 지금껏 ‘도덕적’으로 행동할 때마다 사람들이 보통 ‘부도덕하다’고 표현하는 행위나 생각을 할 때보다 정신 상태가 더 안 좋아졌음을 사고의 첫 단계에서 곧장 인지했다. 이는 일반적 현상이다. 왜냐하면 주변 환경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들 속에서 생각과 행위는 자신의 역량을 전부 펼쳐 보이는 반면, 의무만 다하면 그만인 곳에서는 세금을 납부할 때와 다를 바 없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악은 적잖게 판타지와 열정을 동반하는 반면에 선은 명백한 슬픔과 감정 결핍이 그 특징으로 나타난다. 울리히는 동생이 이 도덕적 딜레마를, 선하다는 것은 더는 선이 아닌 거냐는 정말 거리낌 없는 질문으로 표현했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이게 어렵고도 흥분되는 일이라고 주장했고, 그럼에도 왜 도덕적 인간들이 거의 언제나 지루한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248


선을 추구한다는 일은 재미없는 일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즐거움을 찾아가려는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지루해 보일까? 정언명령을 실천하며 살았던 칸트를 보며 정말 재미없는 삶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 않은가. 즐거움을 찾는 일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면 피해야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즐거움이나 만족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한다면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주는 피해도 시대마다 달랐다.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현대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된 사례를 생각해 봐도 도덕적이라는 관념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하라’는 요구와 ‘하지 마라!’는 요구 사이의 관계를 선과 악에 대입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에 또 하나의 좀 더 일반적이고 비개인적인 형식을 부여했다. 이웃사랑의 정신이든 훈족의 정신이든, 한 도덕이 상승 중인 한, ‘하지 마라!’는 ‘하라!’의 이면이자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행위와 행위하지 않음은 발갛게 타오르고, 그것에 결함이 있더라도 문제시되지 않는다. 영웅과 순교자들의 결함이기 때문이다. 이 생태 속에서 선과 악은 온전한 한 인격의 행복과 불행을 닮았다. 그러나 논쟁적이던 것이 주도권을 잡아 확산되고 특별한 어려움 없이 실행되면 그 즉시 요구와 터부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결정적인 상태를 지나가게 된다. 즉, 의무가 매일 새롭고 활기차게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침출 되어 ‘만약’과 ‘불구하고’의 논리로 해체되고 다양하게 사용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와 함께 하나의 과정이 시작되고, 이후의 경과 속에서 미덕과 악덕은 규칙, 법칙, 예외, 제한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태생적 동일성으로 인해 서로 점점 비슷해지다가 결국에는 경이롭지만 근본적으로는 참을 수 없는 자기모순이 생겨난다. 울리히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 자기모순의 본질은 이렇다. 순수하고 깊고 원래적인 행동방식들의 즐거움, 즉 허용된 사건과 마찬가지로 허용되지 않은 사건에서 또한 튀어 오를 수 있는 불꽃과도 같은 즐거움과 비교하면 선악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249~250


'하라!'는 욕망이고 '하지 마라!'는 규제이다. 인간이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 무질서와 혼돈이 양산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법을 만들었고, 법을 통해 규제를 해왔다. 철학과 법은 공동체에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샴쌍둥이 같은 것이다. 개인의 순수한 열망과 욕구가 사회적으로 바라볼 때 범죄라면 이는 법을 통해서 제한한다. 모스부르거가 자신의 심리상태에 따라 살인을 했고 이 행위는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인간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 스스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면 더는 개인이 부여한 의미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욕망과 질서 사이에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균형이란 단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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