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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Jan 09.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13)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그가 함께 겪어온 시대에는 절대적 의무에 대한 갈망이 현존하는 개별 미덕의 저장고에서 어떤 때는 이것, 어떤 때는 저것을 끄집어내 시끄러운 찬양의 중심에 두도록 하는 것이 어찌나 쉽고 또 자주 있는 일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국가적 미덕, 기독교적 미덕, 휴머니즘적 미덕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그 역할을 맡았다. 또한 특수강이 그 자리에 들어설 때도 있었고, 그다음에는 친절함이, 어떤 때는 개성이, 또 어떤 때는 공동체 정신이, 오늘은 10분의 1초가, 하루 전에는 과거의 유유자적이 거기에 서기도 했다. 공적인 삶에서의 분위기 전환은 근본적으로 그런 주도적인 개념들의 변화에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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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스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무엇을 믿으며 살아야 할까?'이다. 환경, 국가, 종교, 시대, 과거, 현대, 근대 등 말하는 이가 혹은 글을 쓰는 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마다 가치관이 다를 것이다. 같은 국가, 같은 시대, 같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사람마다 믿는 바가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돈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돈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그런가 보다. 그럴 수 있지. 난 그렇게 생각해. 참 특이하네. 등의 이야기가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도로 복잡해지는 단계에 이른 삶의 도덕적 불가해성을 이미 그 안에 내재하는 여러 해석들 가운데 하나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은 어설픈 통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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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이든, 어떤 도덕이든 정의 내리는 것은 어렵다. 평생 해악을 끼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혹은 작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조용히 살다 간 사람에게 울리히는 어떤 질문을 할지 궁금하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설픈 통찰만으로 가능할 뿐이다.


아마 사유가 넘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속에 그런 질서의 이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성인 남자들이 어릴 적 어머니가 목에 걸어준 성자의 사진을 품속에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감히 쉽게 떼어내지 못하는 이 질서의 이미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그것은 한편으론 올바른 삶의 법칙에 대한 동경을 애매하게 표현한다. 그 법칙은 청동처럼 단단하고 자연스럽고, 어떤 예외도 허용하지 않고 어떤 반박도 내놓지 않으며, 술에 취한 듯 흐물흐물하면서도 진리처럼 명징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다음의 확신을 피력한다. 그런 법칙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인간의 머리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전도나 힘으로는 만들어지지 않고, 그게 환영이 아니라면 오직 모두의 노력으로만 불러올 수 있다. 울리히는 한순간 망설였다. 그가 아무것도 믿지 않는 독실한 인간임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껏 아무리 학문에 매진해 왔어도 인간의 아름다움과 선함이 그들이 믿는 것에서 오는 것이지 결코 그들이 아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항상 앎과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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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믿으며 살아야 할지에 관한 질문에 울리히는 믿는 것에서 온다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는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선함은 아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에서 온다는...... 그 믿음은 항상 앎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에 해답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배운 것 안에서만 해석할 수 있다. 직관적인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종합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세 어린아이에게 직관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종반부로 갈수록 울리히의 갈등도 '인간은 무엇을 믿으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에 반해 태양처럼 분명한 것에 길들여진 단순한 이들은 늘 바로 옆에 있는 것에만 손을 뻗고, 그것을 실행하고 감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 말고는 다른 문제에는 결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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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다는 것은 사유의 폭을 넓히기 어렵다는 말과도 이어진다. 사유의 폭이 좁을수록 다른 문제에 관심을 보일 확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과 싸우면 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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