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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Feb 29.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27)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35. 한 위대한 사건이 태동 중이다. 조정참사관 메제리처


아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최고의 기쁨은 항상 침묵이었다. 특히 신중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527


침묵에는 힘이 담겨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단 것과 반대로 신중한 사람의 침묵은 태산처럼 강한 힘이 깃들어 있다.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듣는다. 모순된 논리나 대안 없는 불평을 가득 쏟아내는 사람은 침묵 앞에서 스스로 입을 닫는다.


36. 한 위대한 사건이 태동 중이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다


“제발 이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마세요! 그 사람 주머니에는 분명 다른 계약서가 있어요. 장차 이웃국가들도 무장에 나설 겁니다. 내 말 명심하세요. 그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평화주의자로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겁니다. 군수업체 입장에서는 평화주의만큼 지속적이고 확실한 사업은 없으니까. 반면에 전쟁은 고위험 사업이죠!”
-543


힘을 갖는 것이 평화가 되어버린 시대. 좋은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평화라는 시대. 무기가 없어 유린당했던 아픔을 가진 국가에서 선택하는 군사력 강화. 그런 상황에서 군수업체는 점점 더 매출이 올라간다. 연극에서는 무대에 걸린 총은 반드시 사용된다는 이야기처럼 국가도 무기를 사용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려운 상상이다. <특성 없는 남자>가 전쟁을 예견한 책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이 드러난다. 안타깝게도 100년 전의 소설 속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에휴.


“군부는 전쟁 말고 다른 건 생각해선 안 됩니다. 다른 문제는 모두 다른 해당 부처에 맡겨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어설픈 딜레탕티슴으로 오히려 전 세계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어요. 반복하자면, 외교에서는 부적절하게 평화를 말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평화에 대한 요구가 정점에 이르러 더는 막을 수 없을 때 항상 전쟁이 일어나죠! 그건 자료로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543~544


평화에 대한 요구가 정점에 이르러 더는 막을 수 없을 때 전쟁이 일어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전쟁을 일으키는 논리가 가만히 두면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이 될 거라 먼저 선공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닐까. 슈툼 장군이 자료로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고 하니 과거의 전쟁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무기를 내려놓고 싸우지 않는 평화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일까? 불가능한 것일까? 과연 전쟁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일까?


“여기가 정말 멋지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아내는 여기 사람들이 무엇에 관해 그렇게 이상한 말들을 쏟아내는지 궁금해해요. 게다가 포이어마울은 어떤 사람이오? 게르다는 위대한 시인이라고 하고, 한스 제프는 사람들을 모두 속여 넘긴 출세지향주의자일 뿐이라고 하던데!?”
울리히는 그 중간쯤에 진실이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거 참 좋은 말이오!” 피셸이 울리히에게 사의를 표했다. “그러니까 진실은 항상 중간쯤에 있다는 말이구려. 그런데 오직 극단밖에 모르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 내가 한스 제프한테 늘 하는 얘기가 있소. 모든 사람은 자기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장시간 지속되는 것은 돈벌이가 되는 견해뿐이다. 바로 그게 남들이 그 견해를 인정한다는 증거니까!”
-546~547


울리히와 피셸 이사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가능성 인간인 울리히의 말처럼 정답은 중간쯤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극단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양 극단을 보고 중간쯤에 위치한 사람을 줏대가 없는 사람처럼 평가하기도 하고 회색주의자로 폄하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에서 결국 장시간 지속되는 것은 돈벌이가 된다는 피셸 이사의 이야기가 무섭도록 씁쓸하다. 어쩌다 인간은 돈에 끌려다니게 된 것일까. 평화를 지키려면 좋은 무기를 보유해야 하고 좋은 무기는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국가나 개인 모두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 같다.


인간은 원래 항상 무언가에 대한 안티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독일인들은 체코 사람들과 마자르족에 안티이고, 체코 사람들은 마자르족과 독일인에 안티이지 않습니까? 결국 확장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안티라고 할 수 있어요.
-554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이념, 사상, 외모, 인종, 출신 등 안티는 안티를 낳는다. 공존의 공식이 안티일지 인정일지 어느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지만 평화에 가까운 것은 안티보다 인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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