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욕망 사이
난 술을 좋아한다.
특히 탁구를 격렬하게 친 후 마시는 막걸리는 그야말로 꿀맛이다. 혹은 유난히 일이 많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쉴 새 없이 말을 많이 하는 날엔 기름진 음식과 포도주 생각이 간절하다. 운동 후에 마시는 막걸리는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마시는 것이 더욱 좋고, 일과에 지친 날은 집에서 혼자 조용히 마시는 것이 훨씬 좋다. 지난 한 해를 장식했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란 단어와 일맥상통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소확행이란 단어를 들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철학자는 에피쿠로스이다. 쾌락을 추구했던 에피쿠로스는 큰 집도 없었고, 음식도 소박했다. 치즈 한 덩어리와 포도주 한 잔에 기쁨을 느끼는 고대 철학자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내겐 '소확행'이란 핑계를 준비해 두고 방치해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뱃살이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호르몬의 영향 등으로 복부에 지방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과 상관없이 식욕은 줄어들지 않는다. 평소에 입던 바지가 작다고 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몸은 꾸준히 신호를 보내온다. 꽉 끼는 바지를 입은 후 음식을 먹으면 어김없이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복부 살을 빼거나, 바지 사이즈를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바지 사이즈를 늘리기는 정말 싫다. 정말. 배가 나오면 보기에도 좋지 않고, 체중이 늘어나면 가장 먼저 무릎 주변이 아프다. 순발력을 요구하는 탁구에도 좋지 않다.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도 싫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고 싶은 것과 빼고 싶은 것 사이의 욕망에 갈등한다. 안타까운 건 빼고 싶은 욕망이 먹고 싶은 욕망에 대부분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미각의 쾌락을 빼앗고, 성적 쾌락을 빼앗고, 듣는 쾌락을 빼앗고, 또 아름다운 형태를 봄으로써 일어나는 달콤한 감정들을 빼앗아버린다면 나는 행복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에피쿠로스 Part (알랭 드 보통)
인간의 삶의 목표가 행복의 추구라고 할 때, 먹는 행복과 날씬한 몸이 주는 행복을 비교해보면 어떤 것이 클까? 먹는 행복을 선택한 후 배가 나온 모습을 보면 난 왜 스트레스를 받을까? 스스로의 욕망 사이에도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먹고도 싶고, 빼고도 싶고......
결국엔 스트레스의 크기와 양을 비교하는 정량적인 방법으로 분석해본다. 먹을 때 느끼는 행복의 크기가 10(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 불룩 나온 배를 보며 느끼는 스트레스의 크기도 10(맛없는 음식으로 배가 부르면 더 커짐)이라고 하면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속성 측면에서는 먹을 때 느끼는 행복감보다 배가 나온 후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은 이러한 공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뺄 거야. 원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는 거야. 스트레스받은 날은 먹어야 해. 그렇게 또 나의 뱃살은 방치되고 만다.
뱃살을 조금 빼는 데 약 2개월이 걸렸다. 조금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다시 나오는 데에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세상
얇은 옷을 입는 계절이 다가오면서 스트레스의 크기가 늘어나고 있다. 먹고 싶은 욕망이 스트레스에 조금 밀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뱃살과의 전쟁'이라도 선포해서 꼭 승리하고 싶다.
아직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철학할 시기가 지나가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에피쿠로스 Part (알랭 드 보통)
따뜻한 봄이 오고 꽃이 피는 시기인 3월의 푸르른 날, 내겐 이렇게 읽힌다. 아직 살을 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살 뺄 시기가 지나가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고......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