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는 많은 선택에 직면한다. 선택이 모인 것이 삶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려운 선택이든 쉬운 선택이든 타인에게 위임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선택을 인터넷 게시물에 위임하는 사람도 있다. '글로 배웠어'라는 유행어가 생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식사를 위한 의사결정조차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아보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것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걸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 혹은 비난에 대한 두려움
위 두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선택한 일이 자신의 결정이 아니고 '그저 글을 본 것뿐',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뿐'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는 마음 때문이다. '결정 장애'라는 신조어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난 결정 장애야! 네가 선택해
--그래 그럼 오늘은 돈가스를 먹자
-돈가스에 이상한 냄새가 나
--그러게, 오늘따라 냄새가 심하네
-네가 고른 거잖아!
--미안해, 다음부터 이거 먹지 말자
선택을 위임받을 경우, 의도와 달리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타인의 취향을 알기도 힘들고 지난날 맛있던 식당의 음식이 당일에는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재료가 신선하지 못할 수도 있고 주방장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많은 상황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이런 상황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는 메뉴를 제안하기 싫을 것이다. 아니 함께 만나는 것 자체가 싫어질 수도 있다.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것이 책임을 위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의 입에서는 '너 때문에, 누구 때문에'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 선배님, 이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던 대로 해
-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이걸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거죠?
-- 원래 그렇게 하던 거야. 그냥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조직의 경우 관습대로 행해지는 일들이 많다.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고 기존에 해오던 것이 옳다고 믿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기존'이라는 장벽이 생긴 이유도 새로운 방식에 관한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이유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의사결정의 책임을 과거로 돌려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수도 있다.
주변의 조언을 구해서 결정한 사항이 올바른 방향이 아닐 경우, 그런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 건 누구의 책임일까.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어야 한다는 옛사람의 말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실인가. 초한지를 보면 한나라 고조인 유방은 소하와 장량 그리고 한신이라는 출중한 사람을 주변에 두어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한나라를 소하나 장량 혹은 한신이 통일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의사결정의 결과는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면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돈을 들여서라도 좋은 인맥을 만들라고도 하는데, 그게 돈으로 되는 일일까. 필요에 의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의사결정을 위임하며 남탓만 하다가 주변에 사람이 떠나는 경우 그 땐 또 누구를 원망할까.
네가 뭘 하든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든 그걸 만든 건 타인이 아닌 너 자신이란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