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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Apr 29. 2022

새파란 마음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기본에서 집이 빠질 수 없다. 

어린 마음에도 이웃 친구 집의 크기와 생활은 단숨에 가늠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내 집을 바라고, 노력하며, 애써 살아갈 따름이다.

언제인가부터 (그럴 일이 없어서인지) 즐거운 나의 집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드넓은 평수와 실소유라는 거창한 공식을 버리고 

이동의 시간마다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진다면 

집으로서의 의미가 크지 않을까 한다. 


검단 사거리는 X자형으로, 마치 가위와도 같다. 

산맥의 산자락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농사를 짓고, 철을 캐던 곳이 잘려 

주거지로 바뀌었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정주 요건은 나빠졌는데

돌기둥 아파트가 죽순 자라듯 생기는 곳이 되어 그 맛 따라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실 이웃 간의 정이라 해봤자 문 앞에 놓인 택배를 

훔쳐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붙어 있되 서로 노출되면 안 되는 투명한 숨바꼭질 놀이다.  


연립주택 사이로 오래되어 보이는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앞쪽에도 집이 있었던 모양으로, 오래 방치된 풍경이 쌓여 있다.

한번은 어르신 내외를 목격한 적이 있다. 위태롭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파란 기와지붕의 주택은 흔적없이 사라졌고 

앞 공간까지 포함해 새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현대에는 지붕에 대한 미적 감각을 폐기하는 것 같다. 

몇 동 몇 호 등 숫자로만 집을 말할 수 있는 것보다

지붕 색깔이나 대문의 색깔 등으로 지칭하며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졌다.

마음을 키워 따뜻해진 공간이 현대 기술로 파헤쳐진 모습을 

목도하는 것은 편치가 않다. 

상상이 되진 않겠지만, 우주宇宙에도 지붕의 흔적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잘 버텨 주었는데,

지붕이 사라진 현대가 

그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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