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라는 초록 우산을 쓰고 자라
바다 생물보다는 육지 산물의 맛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도 추운 겨울, 양은 냄비 안에서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동태탕은
매우 어렸음에도 ‘캬~’ 문법을 알 법도 한, 맛의 후광을 입기에 충분했다.
사실 동태나 조기 정도만 맛보고 자라
서울로 이사해 전학 온 학교에서 처음 응대한 참치라는 통조림 생선에
놀라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급기야 용기를 냈다.
‘이거 고기야?’
먹는 것에는 누구 할 것 없이 앞장서는 시대가 되었으나
못 먹어 보았던 음식 앞에서는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이다.
여전히 박대, 조기, 가자미 트리오의 두 눈동자를 쳐다보기가 쉽지 않다.
이미 저세상 상태인데도
날 흘겨보는 시선은 시냇물처럼 막힘이 없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경인운하의 검댕이 물속을 헤매는 황어의 소식을 기다렸는데
황어 대신 금어金漁를 보게 될 줄이야. 영락없는 금어다.
누군가 좋아하는 살만 맛있게 발라 먹은 현장처럼
그의 몸뚱이는 홀라당, 뼈는 꽈당이다.
검정 직선을 그리던 두 바퀴가 사라졌고
단전의 역할을 하던 안장 또한 사방을 둘러봐도 없다.
얼마나 맛났으면 기어박스조차 뜯어가
더 이상 움직이는 링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기가 찰 노릇이다.
생선 주차장엔 하얀 가시 녀석으로 인해 존재감이 짙은데
잠금장치도 되어 있지 않아 당혹스런 희비를 부른다.
그저 있지도 않은 밥만 한술 더 뜬다.
자유라 하기엔 모자라 보이고
마치 자유 낙하물처럼 떨어져
코 박고 창피함을, 어차피 당한 고통을 삭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보아도 운하에 난폭한 괴물이 사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