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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Jul 31. 2023

사물의 더위

쓰러지지 않겠다고 으스대는 전신주 하나.

뽀얀 장딴지에 거머리처럼 찰싹 붙은 통신선.

어떤 아이가 홧김에 내던진 수박바를 닮은 라바콘 하나.

검단 ‘교차로’와 한솥밥을 먹는 ‘김포생활’.

잡초만으로도 가상한데 자기 인생 다 꾸며 넣은 나무 한 그루.


밤에 나무를 헤집고 나서는 이가 있더라도 

다음날 나무가 좀 더 자랄 것임을 안다.

그나마 푸릇함이 이 장소의 간판스타 격이고

정말 다행인 것은

나뭇잎 사이로는 보이나 미치지 못한 행정!

이들에게는 불볕더위에도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의리가 있다.

더위 사냥이 급하지 않고 함께 쑥덕거릴 친구로서

서로 장소를 지키는 건 아닌지.


건널목을 건너던 원피스 입은 젊은 여성은

검은 아스팔트 바닥에 자꾸만 하얀 침을 쏘아 뱉는다.

이런 장면쯤이야 흔히 접하는 사물들이다.


오늘도 사랑스러운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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