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태풍 카눈이 지나간 후로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모른다. 녀석은 여느 태풍과는 달리 한반도를 천천히(12km/h) 유람하며 15일 정도 머물다 사라졌다. 사회는 피해 규모에만 집중했을 뿐 정작 녀석의 개인 사정엔 관심이 없다.
높은 온도의 해수 영향으로 열과 수증기를 평소보다 많이 넣은 suitcase를 끌고 카눈이 일본과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지나면서 물풍선을 뿌리긴 했어도 놀 대상이 없어 지어보는 사내아이의 뾰로통한 모습에 웃게도 된다. 뜨거운 바다 이불에 덮여 있다 보니 날뛰는 거야 기본이고 식히는 시간이 절실했을 것이다. 세계의 관심인 K-지역을 그냥 놓칠 리도 없다. 놀아주지 않으니 곧장 휴전선을 넘었고 지친 속을 만두와 평양냉면으로 달래고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러고는 광명성 로켓을 타고 우주에 빠졌다.
카눈은 기상관측 이래 최초의 한반도 종단 태풍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그의 일대기가 그려지는데 인사도 없이 사라졌으니 이제 물어볼 길이 없다. 매미의 일생도 드라마틱하지만 태풍의 삶은 기절초풍 격이다. 카눈이 삶은 냉면 맛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