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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혁한 공공

by 유광식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다. 높아지면 곧 내려올 것이라는 기대는 그나마 현재를 견디게 하는 요소인 것 같다. 어느 해보다(늘 그래 왔지만) 더웠던 올여름, 현란한 더위가 압권이었다. 그런데 이 날씨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녹번동에 서울혁신파크가 자리한다. 좁게는 은평, 넓게는 서울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공간으로 여러 기업(연구소, 문화 등)이 입점해 있다. 개발 소식은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했고 올 연말이면 모두 비워야 한단다. 혁신파크는 서울시의 관할 아래 운영되는데, 이곳이 2030년 목표로 60층 규모의 빌딩과 코엑스 못지않은 융복합 도시로 탈바꿈 예정이다. 소식만으로도 다시 덥다.


실외기조차 예외 없이 이번 여름을 마지막으로 철수해야 한다. 바로 앞 냉각탑은 조각상이 된 지 오래고 각 방으로 향하는 여러 통신선은 단정한 실외기와 대조적으로 골머리를 앓는 모양으로 얼키설키 꼬여 있다. 가느다란 숨통처럼 실내기와 소통하는 호스는 얼마나 더 냉기를 나를 수 있을까? 실외기가 할 수 있는 건 빙글빙글 도는 일로 간단한데, 곧 들이닥칠 분위기는 팬을 거꾸로 돌리고도 남을 기세다.


기후라는 것이 단순히 자연 현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의 활동이 기후를 쥐락펴락하니 문제 해결을 위해선 사회 안 인간의 움직임도 적극 살필 필요가 있다. 공공을 위하는 것은 높다란 부피를 박는 것보다 많은 기업이 활동의 매뉴얼을 만드는 시도와 응원이 아닌지 묻는다. 위기가 곧 기후임이 자명한 현실에서 혁신파크 폐장은 정녕 공공의 마음을 데우는 새 보일러 설치가 아니라 저변의 문화를 밟고 누워 버리고 싶은 특별층의 기분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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