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의 지문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평상시에는 별 불편함이 없는데 주민센터에서 서류를 발급할 때 무인발급기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200원이면 발급되는 서류를 공무원에게 2000원이나 주고 발급받아야 합니다. 지문이 없어진 것이 저의 탓이니 10배나 비싼 돈을 내고 서류 발급을 받는 게 맞는 것인지, 동공이나 얼굴인식을 통해 신원확인이 가능한 요즘 시대에 손가락 지문만으로 신원확인을 하는 공공기관의 시스템의 한계가 문제인지 의문이 생기는 시점입니다.
한번은 오기가 생겨서 무인발급기 앞에서 될 때까지 해보기로 했습니다. 무미건조하게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는 “지문인식에 실패하셨습니다”라는 멘트를 37번 듣고 난후, 저는 결국 기계에 지고 말았습니다. 기계는 절대로 스무살 저의 손가락 지문과 다른 지금의 나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손가락 지문이 사라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손가락 끝에도 주름이 생긴다는 사실과, 손의 피부가 건조해지면서 탄력이 없어졌다는 이유 등 제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펜” 때문입니다. 아날로그 글쓰기를 열정적으로 즐겨하는 저로서는 두꺼운 노트도 며칠만에 거뜬히 쓸 만큼 손글씨 쓰기의 매니아입니다. 펜이 손에 붙어버린 느낌이 들 정도로 항상 손에 펜이 쥐여져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글쓰기를 할 때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엄지와 검지 손가락 끝으로 펜을 세게 누르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보면 손톱이 절반정도 하얗게 된 채로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펜으로 눌린 쪽 살은 맨들맨들하게 지문이 없어졌고, 그 아래쪽으로는 주름이 깊이 패여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문인식 기계가 저를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합니다. 제가 육안으로 보기에도 지문이 완전히 새로 자리이동을 해서 형성된 손가락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지문이 사라진 대가를 매번 비싸게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불합리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를 종이서류로 발급받아야 하는 것도, 게다가 신원확인을 손가락 지문으로만 확인해야 하는 것도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런 번거롭고 시간 소비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하루 빨리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지문이 사라져서 무인서류발급기를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동공과 얼굴인식이 가능한 새로운 기계가 각 주민 센터에 하루 빨리 설치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