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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아니 May 26. 2022

#09  함께 걷다보면 깨닫게 되는 것들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늦여름이 저물무렵이면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국토순례를 앞두고 하루에 한 시간씩 걷기훈련을 했습니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2박 3일 동안 걷는 국토대장정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마주하게 되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교사들이 미리 답사를 마친 시골길이나 도보여행길을 따라 아이들은 일렬로 걸었고 맨 앞줄에 선 친구가 깃발을 들었습니다. 대열의 맨 끝에는 선생님들이 걸었고 아이들의 긴 대열 옆으로는 비상약과 물 그리고 간식 등을 실은 지원 차량이 천천히 보조를 맞추어 갔습니다. 국토순례가 시작되는 첫째날에는 대체로 밝은 표정으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종알거리는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마음 속에는 당장이라도 지원차량에 올라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만 했습니다. 누구 한명이라도 차에 타겠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면 너도 나도 엄살을 부려보겠지만 먼저 나서는 친구는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큰아이의 동기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성장시기마다 여러번 수술을 해야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Y가 친구들과 국토순례를 한다고 했을때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걷고 싶었던 Y의 마음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사들과 부모님의 고민끝에 결국은 Y도 함께 국토순례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대신 언제라도 힘들 때면 차량에 탑승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런 Y가 함께 걷고 있는데 다른 친구들이 다리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Y가 국토순례를 하던 첫 해에 담임 선생님 두분은 전체 아이들을 인솔하셨고 교장선생님이 영채의 옆에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채의 속도는 느려지고 친구들의 대열에서 한참이나 거리가 멀어졌지만 교장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기 때문에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또 중간중간 간격이 너무 멀어졌다 싶으면 지원차량을 타고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걷다가 적당한 평지가 나오면 잠시 길에 앉아 쉬면서 간식도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땅바닥이 방바닥인 처럼 그대로 누웠고 서로 어깨를 두드려주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소박한 시골길은 지루할 틈이 없는 다채로운 길이었습니다. 이따금 개울도 나오고 길가에 풀이나 꽃들도 어느것 하나 같은 모습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강아지 한마리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아이들의 걷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귀여운 시골 누렁이 녀석이 아이들과 보조를 맞춰서 5km 정도를 함께 걸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동네에 놀러온 사람들을 가이드하는 것 마냥 한참을 따라 걷는데 아이들이 그 강아지 때문에 정말 행복해했습니다. 너무 멀리까지 가다가 혹시라도 길을 잃는 건 아닌가 선생님이 슬슬 걱정이 될 무렵 강아지도 더이상 자신의 영역이 아니었는지 더이상은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첫째날의 하루 여정이 마무리 되었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숙소에서는 안전수칙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제약없이 자유롭게 영화도 보고 게임도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치킨이나 피자도 먹었고 과일과 과자도  풍성했습니다. 밤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대로 골아떨어졌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다리가 아팠어도 숙소에서의 하룻밤 재충전이면 다음날이면 거뜬하게 다시 길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국토순례의 매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밴드에 올려주셨습니다. 특히 첫해에는 제가 얼마나  2박 3일 동안 밴드의 소식에 집중했던지 마치 아이들과 함께 길위에 있는 듯한 착각이들 정도였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의 얼굴은 햇빛에 붉어지고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눈빛과 표정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더욱 또렷해 보였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앞뒤로 걸으며 힘들어 하는 친구들을 서로 응원하며 짐을 나누어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부모님들도 수시로 밴드를 보며 자신의 아이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 그리고 특히 Y를 위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끝까지 완주하는 기쁨을 맛보기를 함께 바랐습니다. 한 달 여 전부터 매일 걷기 훈련을 했어도 50km에 가까운 길을 배낭을 들고 줄곧 걷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평발이 심한 큰딸은 평상시에도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때문에 더 긴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더구나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날의 저녁 식사는 토종닭을 푹고아서 만든 백숙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힘을 내서 잘 걸으려면 먹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힘들게 걷다가도 식사 때만 되면 눈빛이 더 반짝이고 반찬이 따로 필요없었습니다. 잘 먹고 나면 어느새 새로운 힘이 솟아났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복잡한 문제가 있어도 잘 먹고나면 웬만한 문제들이 거의 해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그 말에 상당히 동의하는 편인데 아이들일수록 더 그런것 같습니다.


먹는것만 잘 챙겨주어도 문제 상황은 대부분 아주 작아져서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날은 거의 20km에 가까운 길을 걸었습니다. 말없이 땅을 보고 걷다가 이따금 하늘을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별뜻없는 수다를 나누지만 그렇게 걷는 동안 아이들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과 강한 내면의 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2박 3일의 대장정의 마지막 코스는 학교 앞 작은 광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출발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50km의 대장정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앞머리를 매만지는 여학생도 없었고 시크한듯 표정관리를 하는 남학생도 없었고 모두가 땀과 피로에 찌든 모습뿐었지만 첫해의 국토순례 사진은 제가 기억하는 가장 기특하고 뿌듯한 단체사진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아이는 완주증부터 꺼내서 보여주었습니다. 코팅된 작은 카드에 ‘김예린 47km’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아이의 발을 보니 여기 저기 물집이 잡히고 엄지 발가락 발톱이 까맣게 멍들어 있었습니다. 신발이 잘 안맞았는지 아이의 평발 구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발에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근육이 뭉친 종아리는 딱딱했고 얼굴은 까무잡잡해졌습니다. 지금까지 두 딸아이들이 도합 12번의 국토순례를 했는데 첫해만큼 제 마음속에 강렬했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아마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였을 것입니다. 큰아이는 7학년 때의 기억이 그리고 작은 아이에게는 5학년때의 국토순례 기억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한글 단어 중에는 모든 의미를 한단어에 충분히 다 담아내지 못하는 단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감동’ 이라는 단어가 그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감격스러운 느낌이 뱃속에서부터 목을 타고 올라오면서 점점 커지고 결국 눈시울을 붉게 적시면서 가슴을 먹먹해지게 만드는 특별한 느낌을 ‘감동’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가 괜히 애꿎게 여겨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감동이 느껴질 때면 그냥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감동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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