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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아니 May 26. 2022

#11 아이들의 영혼 돌보기 집밥의 위력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누구나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집밥이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배달음식이나 밀키트 대신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든 온기 있는 음식이 문득 생각날 때면 집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뜻하고 정갈한 집밥 한 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일 먼저 식단의 종류를 골라야 합니다. 한식을 준비한다고 해도 이왕이면 음식끼리의 궁합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고기와 같은 기름기 많은 음식이 주요리 일때는 고깃국보다는 시원하고 칼칼한 콩나물 김치국 같은 메뉴를 정하는 게 좋습니다.


메뉴가 대략 정해지면 그 다음에 장을 보러 갑니다. 한식에 필요한 기본 양념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그 외 식재료들을 준비해 놓습니다. 요리를 위한 신선한 재료들이 빠짐없이 준비되면 이제 손질을 시작합니다. 나물이나 샐러드를 만들 야채들은 깨끗하게 물로 여러번 씻어 헹구어 놓고 고기나 미리 양념이 필요한 것들은 가능한 하루 전날부터 재워놓는 것이 좋습니다. 김치나 조림같은 밑반찬들의 미리 간을 맞추어 놓았다가 밥상을 차릴때 바로 꺼내놓으면 됩니다. 무침이나 찌개처럼 바로 만들어서 먹어야 좋은 음식들도 기본적인 양념들을 준비해 놓으면 만드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특별한 날에 준비하는 구이나 찜같은 요리들도 재료가 신선하고 레시피의 계량을 잘 맞추면 훌륭한 맛을 내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음식이 직접 나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식탁위에 올려지고 가족들이나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저의 삶에 큰 기쁨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준비 과정도 오래 걸리고 식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날은 몸이 피곤해지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얼굴을 떠올리면 피곤함도 어느새 잊게 되고 뿌듯하면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몇 번 그런 기쁨을 느낀 후부터는 한 달에 한두 번은 지인들이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일을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는 저만의 의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어 단어에 ‘comfort food’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도 이 컴포트 푸드에 대한 단원이 있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각자 자신의 소울 푸드를 소개하면서 어린 시절 고향의 향수를 추억하고 간단한 레시피를 알려주는 내용의 영어본문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나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집밥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입니다. 문자그대로 먹는 사람의 영혼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음식인 컴포트 푸드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 가운데에서도 소울 푸드 한그릇의 따뜻한 온기로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으면서 고등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과서 지문을 읽으면서 아이들도 자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한번 정도는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린이집에서부터 먹기 시작한 급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에게 어쩌면 아늑한 고향의 맛이나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기억은 부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학교를 마치고 다음 스케줄인 학원을 향해 달리면서 편의점에서 급하게 배를 채우는 컵라면과 삼각김밥, 그리고 밤 늦게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양념치킨이나 피자 그리고 컵밥 종류가 요즘 아이들에게 추억의 음식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급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누군가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준 정성스런 한끼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의 교과서에는 이러한 집밥이나 공동체가 함께 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우리나라 수능 교재의 대명사인 올해 EBS 영어 지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가정이든 국가이든 공동체의 결속과 지속성에 필수적인 요소는 구성원들이 먹는 음식에 달려있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간이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고 먹는 문제가 인생에 가장 중요한 문제도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음식에 대한 고찰은 삶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공립학교를 떠나 기숙형 대안학교 입학하고나서는 급식을 먹는 횟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기껏해야 하루 한끼 학교 급식을 먹다가 일주일 동안 삼시 세끼를 급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각각 6년과 8년간 같은 학교에서 비슷한 식단의 급식을 먹어왔습니다. 언뜻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집밥이 아닌 같은 음식을 한곳에서 8년 동안 먹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과 꾸준함이 필요한 일입니다. 간식을 마음껏 사먹을 수도 없는 산골 마을에서는 급식을 건너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어쨌거나 긴 세월동안 학교 밥을 잘 먹고 자라준 두 딸아이들이 기특하게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그런 표현을 잘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따금 학교급식 먹느라 오래 고생했다는 말을 자주 해줍니다. 그리고 쉽지 않은 일을 꾸준히 끈기 있게 해냈으니까 앞으로 인생에서 아무리 어려운 일들을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제가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음식 만드는 일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일에 기쁨을 느끼지 시작한 것도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고 배우기도 했었지만 요리가 저에게 기쁨이 되고 행복감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아이들이 대안학교를 다닐 무렵부터입니다.


만일 아이들이 공립학교를 다니며 매일 집에 있었다면 집밥을 언제라도 해먹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보다 요리에 관심이 덜했을 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입학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엄마의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기껏해야 주말에 집밥을 먹거나 방학에 집에 있는 동안 급식이 아닌 집밥을 먹을 수 있는게 전부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서서히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할텐데 그때가 되면 더 집밥을 먹일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주말마다 그리고 방학마다 집밥에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기도 요리를 하면 할수록 기쁨도 커졌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기쁨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요리 실력도 더 근사해지고 가족간의 기쁨과 행복 또한 더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밥을 해 먹이는 일은 아이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과도 같습니다. 소울 푸드라는 단어의 의미가 말해주듯 엄마가 만든 따뜻한 밥과 정성어린 음식들을 먹을 때 아이들은 영혼에 평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따뜻한 밥상을 받는 것처럼 우리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고 고양시키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정성 가득한 엄마의 집밥은 아이들이 스스로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게 됩니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도 결국은 자신을 사랑받으며 사랑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에서 따뜻한 밥상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기숙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바쁜 요즘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스무살 무렵이면 어느새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요리해서 먹일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라도 엄마가 만들어 주던 따뜻한 소울 푸드를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도록 아이들의 영혼을 따뜻하게 돌보아 주는 귀한 일에 무엇보다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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