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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아니 May 26. 2022

#12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자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어느 책에선가 십대 아이들은 융통성 있는 질서 감각과 부모가 정해주는 바운더리를 스스로 원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통제와 억압이 아니라 자신들이 마음껏 탐색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울타리의 경계선을 점차 넓혀주는 것을 실제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원하고 있고 그것이 없다면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일관성 있는 질서 감각과 확장 가능한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고 부모 역시 아이들의 준비된 모습을 보면서 점차 울타리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참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디까지가 통제이고 또 어디까지가 아이들이 원하는 질서감각인지 그 경계선이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같은 형제 자매라고 해도 아이들마다 다르니 그럴 때면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입시교육에만 몰입하게 하다보면 울타리를 확장한다는 개념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입이라는 목표달성을 이루기까지 아이들 스스로 다른 시도나 선택을 할 여지를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 현실이고 또 그만큼의 절대적인 시간과 학습량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학습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통제가 아이들의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있어야지만 아이들이 입시라는 목표에 집중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모들은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관리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이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꾸만 일상속 경계선을 이탈하고 싶어집니다. 그럴수록 부모는 더욱 통제하게 되고 좋은 의도로 시작된 부모의 관리 때문에 원치 않는 관계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맙니다.  


저 역시도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의 여느 학부모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 시킨다는 명목하에 수 없이 많은 통제와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대안교육의 현장에서 실제로 아이들이 생활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부모의 역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실제로 부모가 정해주는 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안전 지대가 점차 넓어지기를 원했고 때에 맞는 부모의 지혜로운 선택과 용납이 아이들의 성장에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최근에 저희 집 가훈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자”입니다. 이 가훈을 만들고 나서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물론 가훈이 있고 없다고 해서 삶의 모습이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훈을 통해 부모와 아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과 또 비록 짧은 한 문장이지만 자신들의 삶과 꿈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해주는 부모의 공식적인 선언과도 같아서 아이들이 특히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집중해서 노력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아이들의 올바른 교육에 대해 중심을 잃지 않는 것과 부모로서의 직관력을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일관성 있는 질서 감각을 유지하되 어느 시기에 얼만큼 울타리를 넓혀 주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준비된 상태를 잘 관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두 딸 아이의 성장 시기가 완전히 동일한 것도 아니었고 성향과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는 질서와 울타리 확장이 지혜롭게 행해져야만 했습니다. 그런 보이지 않는 노력은 때로 시행착오도 많았고 부모로서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지난 10년 간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아이들의 선택과 꿈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마음껏 지지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동안 저와 아이들이 함께 노력해온 시간의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우리집 가훈이어서 그런지 더욱 의미있고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라고 하기엔 삶이 그렇게 만만치 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보기도 전에 이런 저런 안되는 이유부터 찾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의 나이에 이르게 되면 스스로 자신들의 삶에 대한 질서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굳이 부모가 바운더리를 그어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인생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들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우리집 가훈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의 선택한 것들에 대해 더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집 가훈을 볼때마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주도성, 신뢰, 자유, 책임 이런 단어들이 함께 떠오를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라는 뜻이 방종으로 향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훈이라는 것도 한번 정하고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 시기나 집안 분위기에 맞추어 몇 년에 한번 정도 함께 만들고 바꿔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뿐만 아니라 여가 시간에 무슨 일을 해야 자신이 정말 즐겁고 행복한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유롭게 생각해 본 아이들만이 선택의 기로 앞에서 용기 있는 한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반면 깊이 고민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적이 없는 아이들이라면 결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가 너무나 많습니다. 부모의 잔소리와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요즘 아이들의 소리 환경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잡음처럼 들리는 이런 목소리를 피해 달아난 SNS의 세계는 아이들에게 한층 더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한번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시간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자유가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십대 아이들에게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요즘엔 ‘라떼’ 이야기가 누구나에게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잘 안하려고는 하지만 저 어릴 때를 생각하면 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 속에는 공부도 해야하고 대학도 가야하고 이러 저러한 수십 가지 이유들로 항상 제 스스로를 상자 안에 가두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만성 어깨뭉침과 두통으로 고생하면서도 책상에 앉아 있지 않으면 불안해졌고 소설책 읽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국영수 아닌 다른 책을 읽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밤 열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대신에 독서실로 향했고 새벽녘에 집에 들어가는 날도 허다했습니다. 공부를 했다기 보다는 그렇게라도 해야 불안한 마음이 덜 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매일 늦은 시간까지 문제집과 씨름했지만 학창 시절 이후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정작 삶에서 중요하게 해야 될 고민과 탐색의 시간은 단 한 시간도 없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어공부와 취직 고민으로 마음 편했던 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세대를 지나온 지금의 부모 세대는 아마도 많이 공감할 만한 우리 어린시절의 전형적인 풍경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라며 치부해 버리고 넘기기에는 사실 정말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 세대인 우리가 예전에 받아온 교육의 고정관념은 생각보다 깊이 우리의 가치관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받아온 교육의 잣대를 들이대면 댈수록 뭔가 맞지 않고 어긋나는 때가 많았습니다. 대안교육의 현장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에도 한동안은 아이들에게 저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생각을 주입시키고 강요했습니다. 어쩌면 12년간의 공교육 현장에서 세뇌당하듯이 받아온 교육으로 인해 그것만이 전부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들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공부와 대학입학에만 모든 초점을 두고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것이 부모들 만의 잘못이 아니라 그동안 세대를 거듭하면서 받아온 교육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고정관념을 깨고 상자 밖으로 나오기까지 저 역시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에 처음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저의 가치관은 제가 자라면서 받아온 공립학교 교육의 고정관념과 틀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그런 가치관으로 공교육의 울타리를 넘어선 초기에는 아무런 지지대 없이 보호받지 못한채  홀로서야 하는 나무 처럼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 저를 생각하면 지금과 같이 아이들에게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꿈을 펼치라고 진심으로 말 할 수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해 가는 모습이 정말 귀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아이들이 저렇게 마냥 행복하게만 학교 생활을 하고나면 대학은 들어갈 수나 있을까 이후에 밥벌이는 하고 살까 그런 고민들이 시시때때로 머리속을 어지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대안교육의 현장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지나온 시간이 저에게 가르쳐준 귀한 삶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의 인생과 꿈에 대해 부모인 제가 열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하기 이전에 온전한 한 인격체로서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키워갈 때 불안한 마음을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랑과 믿음이 더 크게 자라는 경험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공립학교 입시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참교육의 현장을 찾아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육의 방법이 다양해지고 오로지 대학입시의 성공만이 목표가 되었던 지난 세대의 편견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용기와 뚝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자녀교육에 관련된 문제일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중대한 아이들의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 전통의 가치관 대로 남들이 대부분 가는 길대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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