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선생님, 대안 대학교도 만들어 주세요!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아이들이 대안학교를 다니는 동안 국영수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교과목 공부로 인한 입시 스트레스를 덜 받다보니 상대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책도 많이 읽었고 친구들과 학창시절에만 경험할 수 있는 추억도 많이 쌓았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프로젝트나 동아리 활동에 참여해서 재능을 발견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도 마음을 다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밤이되면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친구들과 학교 앞마당에서 쏟아질 듯 빛나는 별사진도 찍었습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에 마음 시려할 줄도 알고 가을에 지는 잎과 겨울의 눈부신 풍경에 감동할 줄도 아는 아이들로 자랐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현재의 삶을 사랑하며 스스로 꿈을 찾아가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바라고 원했던 부분은 이 아이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대안 대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일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에서 남들처럼 시험공부하고 스팩 쌓고 취업준비하면서 4년이라는 청춘의 시간을 다 써버린다면 고등학교에서 대입공부하느라 3년을 모조리 쏟아붓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갓 스무살이 되는 대학생들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은 어떤 면에서 입시준비로 여념없는 고등학생들 보다 더 힘든 취업준비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대안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음 배움터가 대학 말고는 마땅치 않다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대안대학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언제 생길지 모르는 대안대학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국이나 이스라엘의 중고등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갭이어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있습니다. 아니면 일년 정도 여행을 다니며 배우는 로드스콜라 대안학교도 괜찮을 듯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일년 동안 다른 공부보다 인문고전 독서만 하는 한 해를 마련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농사일도 해보고 한옥도 지어보고 또는 일이 년 정도 전세계를 돌며 봉사활동을 하는 로고스호프에 승선하는 일도 이때가 아니면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일까라는 생각도 한편 듭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는 다면 방법은 사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바라기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공동체 안에서 배움을 이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자신의 꿈과 비전이 구체화 된 이후에 대학에서 공부하고 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매우 바람직하고 권장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학입학과 졸업의 목적이 취업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대해 폭넓게 생각을 할 여유를 우리 아이들이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강제적 갭이어의 분위기가 이미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의지에 의해 해외 여행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직업 탐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덜컥 대학을 졸업을 해버리고 나면 마땅한 취직자리도 없고 소위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에서 오는 중압감 때문에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년동안 휴학하고 졸업을 최대한 늦추면서 영어공부나 자격증 등의 스팩쌓기에 대학생들도 고등학생들 처럼 학원비와 취업공부로 부담을 느끼기는 매한가지 인듯 합니다. 예전처럼 일년간 배낭여행을 하거나 특별한 독서의 기간을 갖는 낭만은 이제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대안대학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혼자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딸 아이들이 다닌 대안학교의 초대 교장선생님과 현재 교장선생님은 부모님들과 아이들로부터 대학교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적지 않게 받으셨습니다. 농담반 진담반 드린 요청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부모님들의 마음에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확장하고 이어갈 수 있는 대안대학도 생겼으면 하는 진심어린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미네르바나 몬드라곤 같은 창업대학도 기존의 대학의 문제점을 보완한 일종의 대안대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일반 대학보다 더 들어가기가 어려우니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고루 나누어 주기에는 역부족 입니다. 2년 전쯤 저의 블로그에 미네르바 대학에 대해 조사해서 올려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다른 글들이 보통은 100회를 넘기기도 힘든데 그 글의 조회수가 무려 2500회를 넘는 것을 보고 저조차도 놀랐습니다. 미래의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반증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아주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던 대안학교의 초대 교장선생님이 퇴임이후에 제주도에 대안대학을 세우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대학의 명칭(가칭)은 ‘LEINN JEJU 별무리’입니다. 레인 제주 별무리는 2022년 9월에 개교를 앞두고 있고 스페인 몬드라곤 대학의 졸업장과 학사학위가 나오는 정식 대학과정입니다. 4학년 8학기제로 운영되는 이 대학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학교의 교육철학에 동의하는 고등학교 졸업자(예정자)면 지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대학의 특별한 점은 미네르바나 몬드라곤 대학처럼 강의실에서 교수의 강의를 듣는 대신에 팀컴퍼니(Team Company)를 설립하고 기업이나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현장에서 기업 활동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학생들은 대학 4년 동안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하며 매출을 올려야 하고 팀단위의 성장과 결과를 함께 공유하며 학습합니다. 글로벌 환경에서의 팀기업 활동을 하기 때문에 영어 기반의 팀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해마다 1-2개월 정도 학습여행(Learning Journey)을 떠납니다. 창업 대학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학교의 교육철학과 설립의 배경을 알면 10년전 별무리학교가 개교하던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레인 제주 별무리 대학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우리나라의 교육계에 영향력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설립준비팀의 치열한 고민과 헌신의 발자국을 카카오채널 레터를 통해 매주 읽으면서 앞으로의 대학교육의 위대한 변화를 꿈꾸고 기대하게 됩니다. 올해 아이들이 다닌 별무리학교의 졸업생 중에는 몬드라곤 인터네셔널과 레인 서울 합격생들이 각각 한명씩 나왔고, 미네르바스쿨에 합격한 학생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9월 입학때까지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 인턴쉽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레인 제주 별무리는 어떤 면에서 그동안 학부모들이 간절히 바라던 다음 배움터의 시작을 여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저의 가족들은 제주에 가서 교장선생님과 사모님을 만나뵙고 왔습니다. 은퇴 이후 미얀마 선교를 떠날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가 다시금 한국과 아시아의 다음 세대 교육을 위해 대안대학 설립이라는 쉽지 않은 개척의 길을 걷고 계신 두분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삶이 몹시 부끄러워졌습니다. 더 버릴 것도 없고 내려 놓을 것도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헌신의 길을 걷고 계시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는 참 많은 것을 손에 쥐고 놓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사도 부모도 아이들에게는 그 삶 자체가 본보기여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기도 합니다. 말과 삶이 일치되는 그런 귀한 분들을 지난 10년간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와 아이들에게는 복된 일이었구나 다시금 느낍니다. 앞으로는 대안대학과 같은 교육기관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많은 영향력 있는 인재들이 그런 교육공동체를 통해 배출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