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일 년에 두 번, 다시 회복되는 철학
대안학교 8년차 엄마의 리얼 체험기
#6 일 년에 두 번, 다시 회복되는 철학 – 컨퍼런스와 총회
별무리학교는 전국에서 아이들이 온다. 따라서 학부모 모임은 주로 지역단위로 이루어지고 있고,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컨퍼런스와 총회에는 전체 학부모가 함께 모인다. 물론 ‘진로의 날’이나 ‘별무리축제’ 그리고 ‘공개수업’ 등 부모들이 학교 행사에 함께 참여하는 날들이 있지만 컨퍼런스와 총회는 별무리의 학부모라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두 개의 주요 행사이다. 이때에 선생님들은 일 년 간의 학사과정과 학교의 운영방향을 전반적으로 설명해주시는 것 외에도 학교의 교육철학에 대한 강연회를 해주신다. 이 시간들은 무엇보다도 나로 하여금 기독교교육의 필요성과 참교육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내 자신이 살아오면서 받아온 공립학교의 교육의 가치관과 그로인해 길들여진 오래 묵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귀한 시간이다.
브래들리 히스의 <조용한 혁명, 기독교 학교>라는 책에 보면 익숙함에 의해 바보가 되는 공립학교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의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르치는 공교육의 맥락은 그 자체로가 하나의 무신론적인 교리가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유아기 때부터 가치관과 세계관 등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십대의 대부분을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왔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논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논쟁 이면에 보다 근본적인 진리에 관한 왜곡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배워왔다. 그 때문에 우리의 뇌리 깊은 곳에는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하는 지금의 교육환경이 너무나 당연하게 각인되어왔고, 그러한 교육의 중심에서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왔다.
기독교 대안교육은 공립학교의 인본주의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선택이 아닌 본질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본질 즉 신본주의에 입각한 교육은 학교와 교회와 가정에서 동일한 목소리를 낼 때라야만 가능해진다는 것을 나는 지난 7년간의 경험을 통해 배워왔다. 주일에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녀들이 주중에는 학교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을 받고, 또 가정에는 입시경쟁에서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면 우리 아이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어갈까. 부모들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용한 혁명, 기독교학교>의 저자는 교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인 동시에 양육하는 것이며, 내용인 동시에 문맥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내용을 서로 공명하며 공생하는 공동체라는 문맥에 심겨질 때에
가장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 브래들리 히스-
별무리의 부모로 살아오면서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잘 양육하기 위해 부모교육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우리가 받아온 교육이 대부분 공립학교의 인본주의의 맥락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입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모두가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입시위주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오래 세뇌되어온 고정관념을 깨기가 힘들었다.
내가 이제껏 가치롭게 여겨왔던 것들을 내려놓는 다는 의미는 어떤 면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도 같은 고통이 뒤따르기도 한다. 특히나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고 가장 내려놓기 힘든 마지막 보루가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대안교육의 경험은 어찌 보면 이러한 기존의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어 일깨우는 훈련의 시간들이었다. 매년 있는 컨퍼런스에서의 교육철학 강연과 독서를 통해 기독교 교육철학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수록 나는 다음세대의 교육에 대한 막대한 책임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동시에 알게 깨닫게 되었다.
별무리학교는 그러한 교육의 필요성과 사명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 헌신된 교사들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학교이다. 우리의 다음세대를 하나님의 훈계와 말씀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먼저 어른들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부모가 좋은 학교를 선택해 주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학교와 가정과 교회는 동일한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된 우리의 뿌리 깊은 인본주의 세뇌를 씻어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매일의 연단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고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