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해 Oct 05. 2023

<그레타 툰베리>,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별빛영화제 2

어리고, 웃지 않는, 여성 환경운동가라는 특질 때문에 더더욱 전 세계 인셀남들의 집중 타깃이 되어 포화를 맞는 이이기에 심정적으로 더 가까이 느꼈고 궁금했던 그레타 툰베리. 역시 작년 전주부터 고대했던 다큐인데 에무시네마 환경영화제 덕에 드디어 보게 됐다. 그간 보도된 그의 모두발언과 가두시위 기사사진을 넘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알게 되어 더 좋았다.



다큐를 통해 알게 된 사실 하나. 그레타는 아스퍼거가 있어 뭔가에 꽂히면 ‘사진을 찍는 듯한’ 기억력으로 모든 것을 머리에 담는다고 그의 아버지 스반테는 말했다. 몰상식한데 인성도 버린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아스퍼거는 원래 뭔가에 집착하는 경향이 특징인데 얘는 기후위기에 꽂혔을 뿐’이라고 조롱하며 트윗했지만, 그레타는 전혀 동요가 없다. 그는 오히려 “가끔은 사람들이 모두 아스퍼거 성향이 있었으면 해요. 적어도 기후위기에 한해서만큼은요.” 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현명한 말을 한다.


몰랐던 사실 둘, 그레타는 여덟 살 즈음 학교에서 보여준 환경 파괴에 대한 다큐에 큰 충격을 받아 몇 년 동안 단식에 가까운 절식을 했다고 한다. 우울증이 악화되어 어머니 말레나와도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배우고 가수였던 말레나와 스반테는 딸을 위해 모든 일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내기 시작했다. (다큐 촬영 시점 기준 미성년인 그레타의 모든 여정에는 아버지 스반테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셋, 그레타의 언어는 내 어렴풋한 기억보다 훨씬 더 명확했고 강력했으며 늘 주저 없이 발언하던 그도 무탄소 요트를 타고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는 엄청나게 떨며 혼란을 느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의 내면적 모놀로그”를 담았다는 BBC 평처럼 그레타 툰베리의 내면의 목소리, 홀로 쓰고 용기 있게 나눠준 일기, 가깝고 먼 관계들, 가족과 친구들과 소망과 두려움에 대해서도 면면을 알게 되어 더 깊이 감응할 수 있게 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묻는다. 좁고 경직되고, 유해할 만큼 지나치게 동질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고기를 안 먹으려 든다는 이유만으로 ‘좀 특이한 어린애‘가 되고 뇌를 거치지 않은 채 튀어나오는 온갖 질문의 폭격에 처하는데 그레타와 같은 활동가들은 오죽했을까. 그레타가 머나먼 동아시아에서까지 (희한하게도 특정 성별인ㅎ) 자칭 논객들으로부터 지난 5년간 받아온 위협과 조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처한 위기와 후세대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결집과 확증편향. 사실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기도 하다.


사람들은 유리 케이스로 고이 보존된 명화나 세계에 한 대밖에 없다는 차에 물감이나 음식물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는 환경운동가들을 ‘과격하다’며 비난하지만, 기후위기로 사람들이 천천히 학살당한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닫게 되면 비싼 차도 인류의 유산도 다 의미 없어진다는 진실은 무시한다. 사람들은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어린 활동가들이 유명세나 헛된 이념이나 심지어는 부모의 선동에 ‘속고 있다’고 얘기한다. 남들이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문제를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지금처럼 살다 가면 그만이라고 믿는 사람과, 이미 도래한지 오래인 위험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타인을 위해 실제로 행동할 만큼의 민감한 지성과 이타심을 가진 사람 중 누가 더 속기 쉬운 사람일지를 생각하면 우스울 따름이지만. 하지만 이 역시 언제나 그렇듯 또 쪽수의 문제.


80억 명의 조별 과제라는 말이 나는 처음부터 우습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말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생활 방식을 바꾸는 대단하신 희생을 하려 들지 않고, 보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믿는 것을 보고, ‘감히 날 가르치려고 든다’는 느낌적 느낌에 매몰된 순간부터 그이의 ‘선민의식’을 지적하려 든다. 아니 근데 특정 의제에 한해서라도 앞서간 사람이 있다면… 좀 가르치고 서로 끌어주며 나아져가는 거지 자기가 객관적으로 뒤처진 걸 불쾌해해서 뭘 어쩌자고?


애초에 그레타 툰베리가 왜 유명해졌는가. 어린 나이에 아무도 감행하지 못한 출석 파업을 생각해내거나 나이와 지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대담하고 용기 있게 발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건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살해당한, 그레타만큼 단시간에 유명해지지 못해서 아무도 모르게 기업 청부 살인으로 스러진 환경운동가 수는 2022년 한 해 동안 177명, 2012년부터 10년간 세면 무려 1910명​이다. 가디언이 광의의 ‘environmental defenders’라고 명명한 이들의 인구수는 전체 대비 5%가 안 되지만, 살해당한 사람 중 비중은 34%에 육박한다. 연간 피해자의 수치는 점점 더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누군가가 그만큼 죽어나가고 있단 것은 그만큼 숨겨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인데 사람들은 미처 몰라서인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눈을 꼭 감기 때문인지 이 거대하고 조용한 살해의 흐름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고. 한국의 66일부99  남성들, 기후위기는 가짜란 수준의 소릴 믿고 싶어히는 사람들이 늘 물고 넘어지는 그레타 툰베리의 국적 권력과 자본 권력이 외려 그를 지금껏 어느 정도 보호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다행일 따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목숨의 위협을 여러 차례 당해왔기 때문에 스반테 툰베리는 딸에게 만일의 상황이 생기는 끔찍한 상황을 가정하고, 긴급 구호를 위한 안전 교육을 수강하기도 했다.


설령 툰베리 개인이 영웅이 되려고 한대도 나는 그의 영웅 놀이를 지지하고 동참했을 것이다. 그게 가만히 있는 것보단 실제로 우리 미래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니까. 그가 영웅됨이나 허영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행동과 행동하지 않음의 위험을 신중히 따지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렇기에 결국 나서기로 마음먹은 모난 돌 같은 행동주의자라는 점에 존경을 보낸다.

시위에서 발견한 “Make the World Greta Again”이란 MAGA를 비튼 슬로건이 모두를 웃게 한 이유도 같을 테다. 정작 그레타 본인은 그다지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지만ㅋㅋㅋㅋ 너와 나 한두 명은 (그레타처럼) 불완전하지만 (그레타처럼)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며 서로 존재를 영향을 파급효과를 확인할 때 그 파동은 점점 더 커질 테니까.

기후위기의 해법이 티백을 찻잎으로 바꾸고 일주일에 한 번 채식하는 정도였다면, 위기란 말을 쓰지도 않았겠죠.
(...)
가끔은 사람들이 모두 아스퍼거 성향이 있었으면 해요. 적어도 기후위기에 한해서만큼은요.

- 그레타 툰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