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산국제영화제 (개인적인) 비추천작
슬프게도 영화제에서 마주한 모든 작품이 다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제를 다닌지는 채 10년도 안 됐지만 그간의 경험상 부산은 타 영화제보다 더 화려하고, 상영작 리스트의 길이가 압도적이며, 접근성이 좋으나, 바로 그 양이 질적 만족감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전주의 어딘지 모르게 다정하고 훈훈한 분위기, 마음에 꼭 드는 프로그램들과 선정작들에 비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실패율은 항상 더 높아왔기에(나는 이 실패의 원인 중 어느 정도는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 프로그래머&남성 초청감독 수에서 찾는 편이다ㅎㅎ)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예매는 어느 정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2023 부국제의 면면은 예상 외로 정말 만족스러웠다. 이전만큼의 열정엔 못 미치지만 3박4일 동안 직장인의 쓰레기 체력으로 힘내어 총 11편을 봤다. 그중 앞서 브런치에 추천한 4편이 아주 좋았고, 3편이 그런대로 볼 만했고, 1편이 날 곯아떨어지게 해 기억에서 삭제됐고, 2편이 짜증났는데 이건 몇 년 간 예매작 중 1/3을 건지면 괜찮은 수준이라고 사람들과 자조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주 양호한 수치. 그리고 오늘은 이 '별로였던' 두 편, 뤽 베송의 <도그맨>과 미드나잇 패션의 기대주였던 <빈센트 머스트 다이>에 대해 써야만 하겠다. 왜인지 나 빼고는 모두 좋아하는 듯한 영화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것은 <도그맨>과 <빈센트 머스트 다이>가 너무 좋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같이 큰 기대를 품고 영화관 들어갔다가 짜증내며 나온 관객, 혹은 추후에 이 영화들이 개봉할 때 별점 낮은 순으로 정렬해서 혹평도 참고해가며 볼 지 말 지 결정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 모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줄평 : 뤽 베송씨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네,,,
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원래 워낙 좋아하던 배우고 이번 작에서의 연기는 특히 신들린 수준이라 예쁘고 멋진 모습 큰 스크린으로 보니 만족했다. 근데 각본은 정말… 세나개+나홀로집에+존윅 짜집기에, 뤽 베송 개취로 보이는 온갖 페티쉬적 요소(드랙+신체결손)까지 다 더했는데 결과물이 무색무취 그 자체인 신기원이다.
재미도 긴장도 기교도 의미도 개연성도 없고 오로지 드랙퀸 더글라스의 연기에 모든 걸 의존해서 질질 끌어간다. 더글라스와 정신과 의사 에블린의 ‘공통점’에도 전혀 공명할 수 없다. 그 둘의 순간적이지만 강한 유대가 관객인 나를 왕따 시키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둘이서도 죽이 전혀 맞질 않는다.
립싱크도 안 맞는 에디트 피아프 커버는 왜 또 풀 퍼포먼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피아프와 유리스믹스 등등을 필두로 한 고전 명곡 리스트업도, 여기저기서 본 듯한 감성의 올드한 대사들도, 아무렇게나 튀어나오는 셰익스피어 인용구도, dog과 god의 에너그램까지도 모든 게 너무 뻔하고 창의적이지도 못해서 감독의 이름값 대비 기대 이하였다.
걍 이거 익숙한 그거임 영화과 출신의 망한 졸작 같은 그 감성… 자기가 멋지다고 생각한 레퍼런스 다 끌어모아서 크게 바꾸지도 않고 조합해서 아무렇게나 떠먹이는 거… 그게 뤽 베송의 오리지널리티라는 걸까? 2인 이상이 대화할 때마다 이게 사람의 대화인가 싶어 정말 고역이었다. 야외극장 관중들의 큰 흐름에 얹혀 함께 좋아할 수 없어 나도 진짜 아쉬운데 진심으로.
이런 작품이 이제 와서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대체 얼마나 심심한 노년이어야 이런 걸 재밌다고 만들어내는 걸까? 나는 정말 별로였는데 사람들은 좋다고 극찬하는 포인트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뭔가 어긋난 지점을 하나라도 찾았다. 이렇게 개인 서사의 연대기적 서술을 갑자기 / 이유 없이 / '그냥 해야 하니까 한다'는 태도로 하는 영화들을 나는 아주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포레스트 검프> 혹은 <조커> 그리고 살짝 다르지만 <아네트>가 취향에 맞지 않았던 이유도 그래서였던 것 같고.
근데 이 영화는 그런 크로니클의 구성만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신발언) !!
케일럽과 조조 깁슨의 연기만큼은 좋았단 걸 인정해야겠다. 그 둘의 호연과 귀엽고 똑똑한 강아지들이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는 점에 별 1개씩 줄 수밖에… 어쩌면 God = Dog이 되는 세계관이라 갱스터 불알을 물어도, 총 든 자 눈앞에서 지나가도 만인이 "어라? 강아지가 있어요!" 하고 경탄하기만 하고 절대 총을 제대로 쏘진 않는 것 아닐까…
아무튼 뤽 베송씨 당신 진짜 재미없어 다시는 이런 거 만들지 마씨오… 동행과 이거 보고 얘기하면서 나오다가 어쨌든 뤽 베송의 캐릭터 사용만큼은 참 일관됐고 그가 그냥 꾸준히 자기 보고 싶은 거 만드는 뚝심은 있는 사람이란 게 상기돼서 아주 조금 이해는 갔다(그런 면에서 머리에 힘 풀고 보면 차라리 코미디로서의 기능은 하는 영화). 뤽 베송의 전작들 중 여자 킬러 즉 안나와 루시를 그냥 성반전하면 도그맨의 더글라스 되는 것도 웃기는 포인트ㅜㅜ 할아버지 이상한 페티시즘 킬러물 그만 보세요 진짜
사실 이 영화 때문에 미드나잇 패션 예매한 건데 완전히 대실망. 소재의 강렬함만 남기고, 연출이며 미장센에 나름대로 돈과 노력도 들였으면서 정작 중요한 ‘왜’를 설명하지 못한다.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척하지만 사실 설명하지 ‘못하는’ 전형적으로 김새는 작품.
평범하다면 평범한 - 그러니까 빻은 농담도 종종 하고, 이웃집 애들에겐 친절하고 대체로 소심하지만, 데이팅앱에는 쪼다 같은 허세도 부리는, 그런 ‘평범한 남자’답게 평범한ㅋㅋ - 빈센트가 어느 날부터 이유 모를 타인의 공격을 받게 되는 얘기다. 생판 남들이 보이는 불시의 적의. 이 증상이 빈센트 혼자만의 불행인 줄 알았을 때는 유머와 긴장이 살아있지만, 그가 한 사람씩 동지들을 찾게 되며 다소 생명력을 잃고, 바이러스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번지는 도로는 가장 힘이 빡 들어간 시퀀스인데도 외려 완전히 흥미를 잃게 한다.
차라리 몇 번 노트북으로 얻어맞고 샤프로 찔리고 노숙자며 택시며 쫓기느라 잔뜩 겁먹은 빈센트가 밤거리를 걸으며 모두를 경계하는 초반부 씬에서의 긴장감이 가장 좋았다. 오 드디어 약자일 일 없었던, 제1세계 백인 중산층 정규직 남성의 약자됨에 대한 응시인가? 하고 순간 구미가 당겼기 때문. 그의 첫번째 센티넬(감시자) 동료가 장년의 백인 남성에 전직 교수인 것도 같은 의도를 담은 설정인 줄 알았다.
택배기사에게 얻어맞다 똥밭에 구르는 씬의 더러운 해학까지도 차라리 코미디로서는 충실했고… 그런데 결국 아무나 걸릴 수 있는 질병으로 코비드 시대의 폭력성을 은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니 이거야말로 뻔하고 쓸데없는 알레고리 아닌가. 초반의 이리저리 처맞고 다니는 빈센트가 잔뜩 기죽은 거 보며 관객들이 너그럽게 할애해준 웃음도 아까움.
그리고 제일 짜증나는 건 그 긴급하고 중대한 위기 상황 와중에 매력적인 서버 여성 마고 보자마자 로맨틱한 무드로 밑밥 까는 노래 나오더니 결국 둘이 섹스도 하고 사랑의 도피도 한다는 점ㅎㅋㅋㅋ 아무리 프랑스 영화라지만 그 상황에 연애가 하고 싶을까? 정확히 마고와 관계가 진전되는 순간부터 급격히 지루해지고 정말이지 유성애에 미친 사람들이 만든 영화다 싶었다. 딱 그 이전까지만 다 잘라내고 빈센트가 맞고 도망다니는 단편으로 남기는 게 백 번 나았을지도…
공교롭게도 둘 다 프랑스 국적의 중장년 남성 감독이 만든 영화인 것을 보니 그들이 향유하는 특정한 정서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다ㅎㅎ
보고 나오자마자 즉각 쓴 왓챠 평을 거의 다듬지 않아 언어가 다소 거칠 수는 있으나 나는 호만큼 불호에 대해서도 제때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 글 역시 개인의 감상일 뿐이며 이 영화들이 너무 너무 좋았다면 유감이고 모두의 호오를 존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