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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해 Jan 09. 2024

<쿠바 리브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2023 마지막 극장 영화, 그리고 에무시네마 X M&M 애가

2023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예기치 않게 신원 미상의 블라인드 영화가 되었다.

에무시네마에서 10/3 <어파이어> 펠릭스 역의 랭스턴 위벨 배우 화상 GV 회차를 예매했다가 배우가 일정상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블라인드 시사 초대를 약속받았었는데, 예상보다 일찍이 국내 미개봉작 상영회 초대 문자가 왔기 때문. 눈 오는 날 연말 선물처럼 기꺼운 마음으로 보러 갔다.



2018년 만난 이래로 부동의 최애 영화관인 에무시네마는 내 영화 취향의 최소 반절 이상을 책임져줬다. 에무의 세심하고 계절성 있고 완벽한 큐레이션이 가르쳐준 감독, 배우, 사조가 얼마나 많은지. 페촐트 영화에 대한 선호 역시 그러해서 21년 초 에무에서 <운디네>를 보고 완전히 압도되고 크리스티안 페촐트란 감독에 반한 후로 그해 추석 연휴는 몽땅 에무의 페촐트 기획전에 할애했다.

<내가 속한 나라>부터 <피닉스>와 <바바라>까지 국내 공개된 7편을 싹싹 발라먹듯 다 보고, 또 한 번씩 더 보고, 그 기획전 포스터는 몇 장 챙겨와서 몇 년 내내 수시로 배치 바꾸는 자취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포스터가 됐다. 영자원이나 이것저것 영화제 온라인 상영으로도 엄마랑도 한 번씩 더 보고 플레인아카이브의 블루레이도 한 세트 샀다. 베를린은 원래부터 유럽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는 내게도 그나마 가장 궁금한 도시였는데, 페촐트가 그린 그 나라 그 도시의 매력적인 복잡함이 너무 좋아져서 베를린살이에 대한 갈망이 점점 더 커지고 구체화될 정도. 그 몰입의 시간은 지금까지도 너무 즐거운 현재진행형이고 페촐트도 몇 년째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그치만 내가 영화인도 아니니 처음엔 배급사 엠엔엠에 대해서는 거의 인지하지 못했는데… 몇 년 간 에무에 출석하면서 엠엔엠이 수입부터 기획 운영 끝단까지 모든 걸 책임진 여러 영화제/기획전을 몇 번이고 가게 됐다. 이번 남아시아 영화제도 그렇고, 지난 여름 루프탑 바자에서마저 엠엔엠 배급작 포스터들 쓸러 가면서 또 거기서 슬슬 눈에 익어가는(ㅎㅎ) 이마붑 대표님과 관계자분들 직접 나와계신 거 보고 매번 내적 친밀감만 키웠다.

아트영화 인디영화 좀 봤다 하는 꼬마 씨네필 치고 페촐트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리고 엠엔엠 영화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이만큼 각별히 좋아하고 신뢰하는 배급사 X 영화관이라면 블라인드여도 절대 실패하지 않을 영화일 것을 굳게 믿고, 한 해 마지막 극장 영화가 될 것 같은데 기왕이면 페촐트 영화면 더욱 좋겠다고 바라면서 갔다.


그리고 역시나... 페촐트 영화였습니다 ! 따란

너무나 기쁘게도 페촐트 95년작 <쿠바 리브레> 당첨~ 영자원에서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쿠바 리브레>라니.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읍니다 … 눈 자박자박 오는 날 이렇게 세기말 낭만으로 점철된 영화로 한 해 마무리하게 해준 에무x엠엔엠에 너무너무 감사했다. 상영 전 에무 프로그래머 분들과 M&M 대표님이 오셔서 연말 인사 겸 내년에 대한 기대감 잔뜩 펌핑해놓고 가셨다.




<쿠바 리브레>는 2002년 작품인 <내가 속한 나라>와 아주 비슷했고, <옐라>, <열망> (그리고 어쩌면 <피닉스>까지도)의 원천 같은 영화로도 느껴졌다. 끊임없이 베를린을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쿠바로 가고 싶어하는 도시 빈민층 남녀의 갈망과 사랑과 배신과 좀도둑질을 담은 로컬-로드-하이스트 무비로 설명할 수 있겠다. 페촐트 식의 유머와 생략 반복을 통해 행간을 풍부히 하고 레이어를 겹치는 방식도 익숙했고 그래서 더 좋았다. 


쿠바로의 이주를 열망하는 남자 톰(역시 <내가 속한 나라>의 한스 역 리키 뮐러!)은 5년 전 떠나온 여자 티나에게 뒤늦게 속죄하려고 하지만, 티나는 톰이 전재산을 털어간 이후 거리의 부랑자로, 창녀로 살아가며 망가진 자신의 예전 모습을 되찾을 길이 없어 톰을 증오한다. 티나와 톰은 계속 엇갈리고, 톰은 이상한 부자 지미를 만나 그의 '친구'이자 운전사이자 심부름꾼이 되어주길 제안받고 함께 다니게 된다. 이상하리만큼 톰에게 우호적인 지미의 의중을 계속 의심하던 와중, 지미가 심장병으로 객사하고 톰은 그를 묻은 후에 신분증과 은행 금고 열쇠와 좋은 차만 가져간다.


어렵게 재회한 티나는 톰이 돈을 털어갔다는 사실보다도 자기를 혼자 버리고 갔다는 사실에 훨씬 더 분노한다. 티나의 ‘복수’는 톰이 완전히 망하길 바라기 이전에 우선 성형수술로 자신의 건강한 이와 피부를 되찾아주고, 비싼 옷을 사주며 슈가 대디 행세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기이하고 애처롭다.

지미의 돈을 찾으러 갈 톰을 노리는 의문의 남자들의 습격과, 신체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티나의 처절하고도 태평한 욕망, 티나와의 관계를 전으로 되돌려놓으려고 하는 톰의 부단한 노력이 교차한다. 길고 지난한 싸움, 우여곡절 끝에 ‘거의’ 용서받은 톰이 티나에게 쿠바행 티켓을 들고 찾아가지만, 모든 것의 해소 직전 모든 것이 어그러진다.



페촐트 영화에서 운전이란 행위는 그저 자기 길을 간다는 의미 이상의, 영화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질문 같다. <내가 속한 나라>에서도 내내 아빠 한스의 의지대로 정치범 가족의 운명이 정해지는 듯하다가, 그가 은행을 털다 총을 맞는 바람에 엄마 클라라가 차를 모는 엔딩에서는 진짜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었던 사람은 사실 한스가 아닌 클라라였음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시작한 사람이 운전대를 잡고 끝을 내야만 하기 때문에.

<옐라>에서도 <피닉스>에서도 <어파이어>에서도 인물들이 차를 몰고 가는 장면으로 시작되며, 그들이 외부 압력에 의해 주행을 제지당하는 (동승자와의 싸움, 경찰의 검문, 차의 고장) 순간이 극의 나머지 흐름을 암시한다. 또 <열망>의 연인들은 여자의 남편을 죽이기 위해 차를 활용한다.

흔히 차를 등장시키는 영화들이 그러하듯 ‘차가 어디로 가는가’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쓰기 위해 차를 모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페촐트 영화만의 특징 같다.



‘얼굴을 바꾼다’ 즉 변형이란 행위와, 계급성에 대한 논의를 매끄럽게 잇는 부분 역시 여러 영화에서 반복되어 왔다. <피닉스>의 첫 장면 유대인 수용소에서 생존한 넬리는 완전히 망가진 얼굴을 전면 수술하면서 예쁜 얼굴이 되기보다도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해달라’고 불가능한 주문을 한다. 

<옐라>와 <열망>의 여자들은 극중에서 눈에 띌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묘사되지만 이들은 ‘예쁘면서 부유하지 않기 때문에’ 더 불행해진다. 남편의 질투와 집착만 심해질 뿐이고, 그가 바라는 주체로서의 삶은 아무리 예뻐도 결국 돈(을 벌 능력)이 없으면 성취될 수 없는 종류의 것.


이전 모습을 되찾으면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 일체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싶어하는 티나, “아름답고 부유하면 좋겠어. 그럼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티나는 넬리, 옐라, 로라의 전신과도 같다. 이전에 페촐트의 2000년대 작들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여성을 피학적인 객체로 놓는 경향이 있다고 불평한 적 있는데, 가장 초기작인 <쿠바 리브레>의 단도직입적 화법을 접하고 나니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이 예쁘고 젊고 힘 없는 여성들은 흔히 돈 많은 남자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최상위 권력을 가진 존재라는 (매우 악의적이고 편협한) 오독에 처하기 십상이지만, 페촐트는 바로 그들이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존재라는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듯하다. 말하자면 페촐트에겐 그들이 바로 자기 영화 세계의 호모 사케르다.



또 <트랜짓>과 <바바라>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도시로부터의 탈출, 밀입국과 망명을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쿠바 리브레>의 빈곤한 자들은 바다가 보이는 니스 혹은 쿠바라는 구체적 이상향으로의 이주를 갈망하나 그럴 수단/자금을 갖지 못해 끝까지 실패한다. 통행증 없이 혹은 기차표를 살 돈이 없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톰이 바에서 만난 또다른 창녀의 말마따나 ‘기차역의 차 한 잔은 공항만큼 비싸고, 기차표는 비행기 표만큼이나 비싸다’. 부자가 아니면 떠나지 못한다는 체념적 선고는, 실제로 말년에 부유해졌으나 심장병으로 인해 결국 도르트문드까지도 가지 못하고 죽어버린 지미를 포함해 모든 가난했던/가난한 이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결국 비참한 자들은 그들을 비참하게 하는 곳으로 끝없이 돌아간다.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육지로, 도망칠 수 없는 빈곤으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으면서도 참 페촐트답다고 느껴지는 엔딩씬에서는, 이제 막 진심으로 웃기 시작했던 여자가 몇 분만에 모든 걸 포기하고 그저 죽어가는 연인의 머리를 받쳐준다. 아름답고 괴로운 얼굴. 이제 다시는 정말로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어진 사람과 용서 받지 못하고 죽어버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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