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이 되는가

그리고 무엇이 음악이 되는가. 임동혁, <크리스마스 음악선물>

by 꿈꾸는 앤

우연한 기회에 남양성모성지 클래식 음악 축제에 다녀오게 되었다. 대성당에서 연주되는 바흐의 미사 나단조 전곡. 웅장한 성당의 공간과 미사 음악의 울림이 만들어내는 감동이 큰 공연이었다. 그 기간에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피아노 연주회도 있었지만 이미 티켓 판매가 완료되어 그의 공연을 보진 못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 그의 공연이 한 번 더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공연 티켓을 구입하게 되었다.


임동혁은 조성진과 인윤찬 이전 그리고 손열음과 비슷한 시기 클래식 음악계에 주목받는 연주자였다.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음반을 내고,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며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덤을 형성하는, 가요계로 치면 아이돌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가 아주 잘 나가던 때에 나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아 어렴풋이 그의 이름만 알고 있었다. 유명하고 천재적인 젊은 피아니스트라고. 요즘엔 그의 연주 소식이 뜸하다 생각했고, 워낙 젊은 한국 음악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해서 그저 드러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그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가 보다고만 여겼다. 유명한 사람의 연주를 듣게 되어 좋다고.


그런데 연주회 며칠 전 그의 이름이 스레드에 언급되는 것을 보고 뉴스를 검색해 보니 유서로 추정되는 편지를 개인 sns에 올렸고, 경찰이 출동했고, 서울의 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그런 뉴스였다. 더불어 그의 사생활과 관련된 예전의 뉴스들도 같이 소환되어 다시 올라왔고, 연주자로서 그의 음악과 삶에 대한 사람들의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웠다. 연주회가 취소되겠구나 했다.


하루 이틀 지나도 연주회에 대한 공지가 없어 찾아보니 연주자의 요청으로 공연은 취소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어떤 마음일까. 무대에 서는 두려움과 서지 못하는 두려움이 공존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무대에 서겠다는 그의 결심에 안도가 되었다.


공연을 보기 전 미사에 참여했다. 12월 21일. 크리스마스 직전의 주일 미사. 신부님은 침묵에 대해 강론하셨다. 너무 말이 많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침묵이 어떻게 이 세상에 영광을 가져왔는지에 대해서. 성지는 회개하고 기도하고 용서하는 곳이지 판단하지 않는 곳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공연은 4시부터였고 2시부터 입장이 가능하여 그의 리허설을 볼 수 있다고도 안내해 주셨다.


티켓 수령을 위해 줄을 서 있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그가 연주를 하고 있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리허설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는 것이 부담스러울까. 어쩌면 무대에 오른 나를 외면하지 않고 보러 왔다고 안도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800석 정도 되는 성당 좌석이 모두 찼다. 공연 시작 전 그의 공연에 대한 여러 사람의 우려를 생각해서인지 그가 쓴 편지를 소개하며 공연에 대한 안내가 짧게 있었다.


우선 염려를 끼친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이 공연은 관객에게 드리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 같다는 편지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무대가 절실했기에 공연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담담하게 표현한 글이었지만 피아노 앞에 앉는, 사람들 앞에 서는 그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살기로, 연주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그 마음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는 혼자서 피아노 앞에서 연주했다. 그리고 세 곡의 앙코르 연주를 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그의 연주가, 공연이 마음에 며칠 동안 남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요즘 클래식 음악계도 유명한 연주자의 공연은 티켓팅 전쟁이다. 특히 해외에서 활동하는 연주자가 한국에서 하는 공연은 드물기도 해서 대부분 매진이고 취소 티켓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 임윤찬 피아노 연주회에서 어떤 사람의 휴대폰이 울려 공연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는 내용의 뉴스가 나오는 것만 봐도 좋아하는 연주자의 연주회를 팬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으며, 좋은 공연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큰 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공연에 운 좋게 가게 되면 내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 공연을 감상하는 것을 방해하는 누군가가 거슬릴 수밖에 없고, 나의 기대를 충족하는 만족스러운 공연을 연주자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묘한 긴장감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임동혁을 공연을 보는 나와 그 공간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 달랐다. 피아노 앞에서 기도하듯 연주하는 임동혁을 보면서 나는 그가 진심으로 잘 연주하기를 바랐다. 나에게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아노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그래서 다시 또 피아노 앞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대성당 안에서 그의 연주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다정함과 염려와 기도와 용서가 음악이 되어 우리에게 왔다. 그래서 그 공연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서 울렸다.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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