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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Apr 26. 2017

동유럽 5개국 + 발칸 2개국 여행기 - 열한 번째 날

비행기 결항으로 인해 성사된 뜻밖의 만남

해가 뜨기 전이었지만 떠나기로 예정된 날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미 부다페스트에서 루프트한자 파업 소식을 접했기에 이미 인솔자에게 미리 말해둔 터라 전날의 결항 소식이 놀랍지 않았다. 그래도 떠나는 날이니까 분주히 짐을 꾸렸고, 마지막 날이라 비행기 타면 밥 먹고 잔다고 화장도 간소화했다. (아이라인 마스카라 안 그리고 그냥 파운데이션만 바르고 눈썹만 그렸다. 아 입술은 컬러 립밤...)


짐을 챙겨서 로비에 내려놓고 이모와 즐거운 포토타임. 크리스마스 무렵 유럽에 오면 좋은 이유는 일단 조명이랑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다. 호텔마다 트리에 전구 장식... 언제쯤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조금 더 늦게 출발하는 일정이었으면 온전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뭐... 앞으로 몇 년간은 성당 봉사 때문에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유럽여행은 꿈도 못 꿀 것 같다.



여행 막바지 사흘? 나흘간은 빵을 거의 먹지 못했는데... 유럽의 흰 빵은 맛있지만... 흰 빵 먹으면 살찐다고... (여행 다니면서 매일 찍은 사진을 보면 얼굴이 점점 달덩이로 변해가서 식사량을 줄이고 나름 노력을 했었다.) 곡물빵들을 먹었는데 곡물빵은 특유의 향이 안 맞아서... 나중엔 물리더라. 그래서 주로 조식에 먹은 건 육류랑 달걀 요리, 샐러드, 과일, 커피 정도...? 여하튼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나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일단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우리 인솔자가 내려 비행기 편을 알아볼 예정이었고, 여행사에서 급하게 구한 프랑크푸르트 현지 가이드가 우리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시내 투어를 할 예정이었다.



Background Music - 바흐 :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장조 中 2악장 라르고
https://youtu.be/Fo0K_n3 VLG4


사실 우리 일정에 프랑크푸르트 투어가 빠져 있어서 아쉬웠는데... 어쩌면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사실 내가 제일 가고 싶었던 국가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였고, 원래 우리가 선택한 일정엔 뮌헨이 있어서 그 도시를 제일 기대했었는데 일정이 바뀌면서 뮌헨이 빠져 굉장히 실망스러웠으므로... 최악의 경우 공항 노숙 밖에 더 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경험도 지나면 다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해서 딱히 많이 걱정하진 않았다. 전날은 무척 불안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걱정이 되지 않았던 아침이었다.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교통의 중심지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마인 강 앞의 프랑크푸르트). 무척 궁금했던 도시였다. 사실 이 도시는 투어랄 게 별로 없는 도시였다. 세계대전 중에 폭격을 맞아 오래된 건물이 적고, 대신 고층 빌딩과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따른 새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 나더러 독일 많은 도시 중 어디서 살래? 하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고를 수 있을 도시였다. 도시의 화려함과 전통의 공존... 그리고... 오래된 집에서 생기는 먼지들에게서 해방되는 곳... (나는 어쩔 수 없는 알레르기와 비염환자... ^-^;)


프랑크푸르트 현지 가이드는 뢰머광장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뢰머 광장에는 구시청사와 교회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우리가 갔을 때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있었다. 크리스마스 마켓 때문에 아무리 찍어도 각이 안 나와서 구시청사 사진은 없다. 이 구시청사 테라스는 유럽컵에서 차범근 선수가 우승한 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역사적인 장소란다. 아직까지는 차범근 선수만이 유일하게 이 시청사 테라스에 올라간 유일한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시청사 앞에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었다. 이 크리스마스트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광장에 놓인다. 심어져 있는 게 아니란 말씀. 가이드가 설명해주니 일행들 모두 놀라 했다... 나랑 이모는 프라하에서 크레인으로 트리 나무를 광장에 갖다 박는 걸 봐서 새삼스럽지도 않았는데... (물론 그 광경을 보기 전까지 우리 이모는 심어져 있는 거라고 하며 나랑 내기까지 했었음...)


시청사 계단에서 찍은 뢰머 광장의 전경. 그리고 시청사 앞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40분 남짓의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너나 할 것 없이 흩어져버렸다. 이모와 나는 마인 강을 보러 갔다. 운하처럼 수송선이 지나다녔고, 큰 도시라고 하기에는 무척 고요했다. 뢰머 광장 반대편 강 건너에는 개신교회가 자리하고 있었고, 뢰머 광장 쪽에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위치해 있었다. 교회 건물들과 시청사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다 전쟁통에 폭격을 맞았다고 했었는데... 아무리 머리로 전쟁 이전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보아도 잘 되지가 않았다. 아쉽기는 했지만... 역시 이 곳은 살기 좋은 도시라는 결론을 짓고 마무리하기로...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알게 된 건데 괴테 하우스가 마인강변 근처에 있다고 한다. 혹시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하신다면 꼭 방문해 보시길...



마인강을 돌아보고, 강바람이 추워서 다시 뢰머 광장으로 돌아와 크리스마스 마켓을 돌아봤다. 이모는 유리로 만든 작은 천사 두 쌍을 구매했다. 점원에게 ‘오늘 비행기 탈 거라 포장 잘 부탁한다.’고 부탁했더니 아주 친절하게 신경 써서 포장해주더라. 시민들의 이런 작은 친절들 때문에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되는 거구나 싶다.


한식당에서 어설픈 된장찌개로 점심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는 무거운 침묵 속에 휩싸여 있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프랑크푸르트 가이드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결항이나 파업이 이 동네에서는 흔한 일이라며 버스 앞에서 설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노력했지, 그 얘기를 귀담아듣는 사람들은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했다. 인솔자가 저 멀리서 뛰어와 버스로 튀어 들어왔고, 다음 날 아시아나 직항으로 모두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공항 노숙과 나와 이모가 떨어져서 경유 편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루프트한자 측에서 제공하는 호텔 숙박 바우처와 식사 바우처까지 받았다. 우리 버스는 오후 2시까지 계약되어 있는 것이었으므로 빨리 호텔로 향해야 했다. 서른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공항에서 캐리어를 끌고 대중교통으로 호텔로 들어가는 건 무리였으니까.


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1박을 하기로 결정되자마자, 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한국의 엄마에게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걸었다. 일정이 하루 더 늦춰질 것이라는 것을 알렸고...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 엄마의 제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분은 엄마의 첫 제자로, 온 가족이 독일로 이민 와 살고 있으며 주말에는 프랑크푸르트의 처자식과 함께 지내고, 주중에는 튀빙겐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 교수님이다. 몇 년 전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에 관련하여 KBS에서 르포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그때 출연한 제자를 발견한 엄마가 프로그램 이름과 날짜를 적어두었던 것을 보고 내가 수소문하여 연락처를 찾아 연결해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 더 체류하게 된 날은 현지 시각과 날짜로 토요일이었다. 별 일이 없다면 아마 처자식과 함께 주말을 보내기 위해 튀빙겐에서 프랑크푸르트에 와 계실 터였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바로 메일 앱을 켜서 엄마의 제자인 이유재 교수님께 메일을 썼다. 이모와 여행을 왔고, 루프트한자 조종사 노조의 파업이 길어져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우리가 하루 머물게 된 프랑크푸르트 라마다 메쎄 호텔에 도착했다. 4성 호텔. 그리고 우리가 여행 내내 묵었던 그 어떤 호텔보다 시설이 좋고 깨끗했다.



Ramada Frankfurt Messe Hotel

http://www.ramada.co.uk/hotels/germany/frankfurt/ramada-frankfurt-messe/hotel-overview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교수님의 답장이 왔다. 자신의 독일 휴대전화 번호와 카톡 아이디를 메일로 알려주셨다. 바로 아이디를 긁어 카톡에 친구 추가를 했고 대화를 거니 보이스톡이 왔다. 저녁 늦게 호텔로 와 나를 만나겠다고 하셨다.


라마다 호텔 객실 우리 방 발코니에서 찍은 사진. 도로 쪽이 아니라 뒤쪽이라서 더 좋았다.


호텔에 오후 시간부터 풀어놓으니 할 일이 없어진 이모와 나는 호텔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호텔 뒤편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고 숲이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마을. 집집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개성 있는 장식들로 꾸며놨더라. 숲을 걸으며 한국에서도 못 밟아본 낙엽도 잔뜩 밟았다. 숲의 고요함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게 바로 힐링이지.



저녁을 먹고, 이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 한편에 마련된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하며 두 시간 정도 담소를 나눴다. 내가 세 살 무렵 88 올림픽이 끝난 후 이교수님이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는 얘기는 엄마로부터 아주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도 그러셨지만 직접 만나게 되자, 교수님은 그때 보고 처음 보는 거라며... 할머니와 놀고 있던 두세 살 짜리 꼬맹이가 이렇게 아가씨가 되어 만난다며 무척 반가워해 주셨다.


엄마에게 교수님은 무척 특별한 제자였었다. 첫 제자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때부터도 영민하고 의젓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1년 가르친 후 교수님은 독일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와 함께 태백으로 이사를 갔고, 그 때문에 이교수님을 보내면서 엄마는 무척 아쉬워하셨다고 했다. 태백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인 엄마를 그리워하는 편지가 날아들었고, 그렇게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독일에서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도 결혼을 하고, 나를 낳고 살아가느라 바쁜데 88년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이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같이 식사를 하고 안동댐을 구경하고 기차역까지 바래다준 일도 여러 차례 얘기를 들었더랬다. 그날 이교수님을 만나고 와서 엄마는 아빠에게 ‘아들을 갖게 된다면 유재 같은 아들을 갖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끼던 제자였다. (물론 이 이야기를 들은 내 남동생은 그런 아들이 못 되어 미안하다고 이죽거렸다고 한다...^-^; 물론 엄마는 엄마 아들이 더 좋다고 했다. ㅎㅎ)


둘 다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사람들이라 출판 관련 이야기도 꽤 많이 했고,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한국 정치상황 얘기도 꽤 많이 나누었다. 교수님은 튀빙겐 대학의 한국학과장이신데 한국의 여러 대학들과 협력을 맺어 교수님 제자들 중 수십 명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오실 일이 있으면 꼭 엄마와 나에게 알려달라고 말씀드리기도 했다. 교수님이 꼭 안동으로 엄마를 찾아뵈야겠다는 생각 마시고... 엄마가 서울로 주말에 자주 오시니까 부담 갖지 말고 얘기하셔서 두 분이 꼭 다시 만나서 많이 밀린 이야기들 나눴으면 좋겠다고...


시간이 늦어져서... 교수님도 집으로 돌아가셔야 하고, 나도 쉬어야 다음 날 비행기를 탈 수 있었기에 아쉬움을 접고 헤어지기로 했다. 헤어지기 전에, 그래도 만났으니 인증샷은 찍어야 한다며 먼저 사진을 찍자고 해 주셔서 둘이 같이 만난 사진을 찍었고, 엄마께도 사진을 보내드렸다. 엄마는 마치 당신이 제자를 만난 것 같다며 무척 기뻐하셨다.


이렇게 무사히, 한국에 돌아갈 수 있게 된 열한 번째 날이 저물게 되었다.


이유재 교수님! 꼭 서울에서 엄마랑 셋이 만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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