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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Oct 10. 2018

고백하지 못한 사랑을 녹여낸 Romance

쇼팽 :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中 2악장 로망스 - 라르게토

오랜만에 돌아온 <하루에 한 곡> 매거진입니다. 그간 밀어닥친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브런치에 소홀하게 되었네요. 독자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먼저 올립니다. 어쩌다 보니 올 한 해는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일 보다, 강사로서 강단에서 여러 분들을 접하는 일이 많았는데,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는 제 본분으로 돌아가 보려 합니다.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올 연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글 작업에 집중해보겠단 마음을 먹어봅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여름도 어느새 지나가 버리고, 도로 옆 가로수 사이가 이제 울긋불긋 해지려 합니다. 가을이 찾아온 게지요. 기온도 하루하루가 다르고요. 쇼팽은 언제 들어도 좋지만 유독 이 시기에 들으면 좋을 음악이 있습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중에서 2악장 로망스 라르게토입니다. 


https://youtu.be/LPa7jjeKVR4?t=1253

예프게니 키신과 주빈 메타가 이끄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연주로...


이 협주곡은 1번이라는 번호가 붙어 있지만, 작곡 순서대로 따지자면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비해 늦게 쓰여진 곡입니다. 하지만 두 협주곡 중에서 이후에 작곡했던 1번을 쇼팽이 더 마음에 들어했고, 악보 출판도 1번이 먼저 되었기 때문에 1번이라는 타이틀을 이 협주곡이 획득하게 된 것이죠.


관악기와 현악기 모두 강렬하게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 1악장도 유명하고 경쾌하고 빠른 3악장도 유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 곡의 매력 포인트는 서정적이고 반짝거리는 2악장 로망스 - 라르게토일 겁니다.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쇼팽의 첫사랑 이야기도 얽혀있고요.


쇼팽이 고향인 폴란드를 떠나 음악의 본고장인 빈으로 향하기 전, 10대 후반의 쇼팽은 스승 엘스너가 설립한 바르샤바 국립 음악원에서 수학하던 출중한 음학도였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폴란드의 모차르트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두각을 드러내던 쇼팽에게도 가슴 시린 첫사랑이 있었죠. 같은 바르샤바 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성악가 콘스탄티아 글라드코프스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쇼팽의 첫사랑 콘스탄티아 글라드코프스카


워낙 소심하고 섬세했던 쇼팽은 자신의 가슴 뛰는 이야기를 차마 그녀에게 전할 수 없었고 그 사랑을 오롯이 그의 음악에 녹여냅니다. 그 시기 그렇게 몰두해서 써낸 곡이 바로 이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구성이 어떻고, 진행이 어떻고 그런 것들을 떠나 (그런 것을 논할 능력도 없지만) 이 곡을 듣고 있자면 쇼팽이 콘스탄티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귀하고 귀한 내 마음을 처음으로 내어준 첫 여인... 너무나 소중해 그 사랑을 쉬이 입 밖에 내지조차 못하겠다는 그 마음... 연주자 별로 해석은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어떤 연주를 들어도 쇼팽의 그 마음이 이 음악을 듣고 있는 제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네요. 


‘사랑한다오 그대,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해서, 차마 이 마음을 전할 수도 없는 그대여...’


이 슬픈 짝사랑의 결말은... 짐작 가능하시겠지만 결국 고백조차 못 하고 끝나버립니다. 쇼팽은 엘스너의 추천으로 빈의 출판업자인 하슬링거를 만나 계약을 맺고 활동 거점을 빈으로 옮기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악보 출판을 하는 조건으로 쇼팽은 빈에서 바르샤바까지 향하는 동안 여러 도시를 돌며 연주회를 열었고, 그의 음악을 듣는 모든 청중들은 환성과 환호로 보답했습니다. 그러니 폴란드라는 국가와 민족을 대표해 쇼팽이 음악의 본고장으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상황에 떠밀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전할 용기가 없어 그렇게 쇼팽은 첫사랑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폴란드를 떠났고, 이역만리 파리에서 힘든 투병생활 끝에 쇼팽이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 사랑은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아는 쇼팽 사후 모리츠 카라소프스키가 쓴 쇼팽 전기를 읽고 나서야 그의 사랑을 알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나뭇잎들이 노랗고 빨갛게 옷을 갈아입어가는 가을 오후의 문턱에서,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는 이전보다 조금은 더 자주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남은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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