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인하 Feb 15. 2019

여행은 내가 하는 것인 동시에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서른세 번째 생일에 빈에서 겪은 오묘하고도 신비한 일

종교적인 성격이 강한 글이오니 종교색이 포함된 글에 불편함을 느끼실 것 같은 분들은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제목 그대로다. 여행은 내가 하는 것인 동시에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계획해서 움직이는 것이긴 하지만 내가 계획한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계획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2017년 여름, 친한 친구가 다니던 제약회사를 퇴사한 후 혼자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을 떠났다. 처음 알아본 것은 프랑스를 낀 여행 상품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더란다. 그렇게 떠난 그 친구는 여행 중 바르셀로나에서 이슬람 과격 집단의 자동차 테러를 겪었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총소리가 나는 반대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고 했다. 그래도 열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이 테러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귀국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퇴사 후 이베리아 반도로 여행을 떠난 것은 이 친구의 선택이었으나, 하고 많은 순간 중 이 친구가 바르셀로나에 머물 때 테러가 발생한 것은 이 친구의 선택이 아니었다. 극단적인 예지만 이 친구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여행에 있어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새벽 네 시, 시차 적응에 실패하고 잠에서 깼다. 전날 열다섯 시간이 넘는 비행에, 숙소까지 찾아 들어오느라 긴장을 엄청나게 했었기에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내 생체리듬은 정확히 한국의 오전 시간에 맞춰 내 눈을 뜨게 만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어둠이 가시지 않은 빈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자 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날은 내 서른세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멀리서 동이 터 오고 저 멀리 성 슈테판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사랑하는 도시 빈에 돌아온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마음이 벅차올라 눈물도 살짝 고였더랬다.)


어스름 동녘이 밝아오던 숙소의 창 밖 풍경. 저 멀리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 슈테판 대성당의 첨탑이 또렷하게 보인다.


빠르게 씻고 나갈 준비를 한 후, 인근의 슈퍼마켓을 찾아 식수와 아침식사 거리를 사서 숙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친구가 내 생일을 챙겨주겠다며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미역국 즉석밥과 함께 빈에서의 첫 식사를 마친 후 구시가지(Innere Stadt)의 링 에어리어(Ring Area)로 향했다.


빈에서의 첫째 날은 성 슈테판 대성당과 그 인근의 명소들을 둘러보기로 한 날이었다. 성 슈테판 대성당과 케른트너 거리, 삼위일체 기념비, 성 페터 성당, 성 미하엘 성당, 호프부르크 왕궁, 신왕궁, 헬덴 광장,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빈 미술사 박물관 등등... 최소 열 곳의 장소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개수는 많아도 다들 다닥다닥 붙어있는지라 빡빡하게 돌아다녀 보고, 그러고도 다 못 돌아보면 다음 날 더 돌아다녀도 된다고 결정했다. 때문에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이자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인 성 슈테판 대성당, 그 앞을 지나는 케른트너 거리, 케른트너 거리 중간에 위치한 금빛 삼위일체 기념비와 그 뒤로 보이는 민트색 돔 지붕의 성 페터 성당... 1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눈 앞에 보이듯 선명하다.


성 슈테판 대성당 / 페스트 퇴치 기념 삼위일체 기념비 / 성 페터 성당
호프부르크 왕궁 / 빈 시청사로 이용되고 있는 신왕궁
헬덴 광장의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 /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성 페터 성당에 들어갔을 때, 신자석에 놓인 종이들이 눈에 띄었다. 오후 3시부터 무료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가 있다는 안내문이었다. 혼자 있었다면 점심을 먹고 다시 성당을 찾았을 테지만, 내 옆에는 친구가 있었다. 서양 고전 음악에는 전혀 관심 없는 친구가...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지만, 나는 친구에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여행 첫날부터 아쉬운 소리를 주고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쉬움은 접어두고 남은 일정도 충실히 이행했다.


호프부르크 왕궁 너머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건물이 위치한 헬덴 광장까지 주파(?) 한 후, 나와 친구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여독이 다 풀리지 않았는 데다가 시차 적응에 실패해 새벽같이 일어나 움직였으니 안 지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거다. 우리는 이 날 마지막 일정으로 성 미하엘 성당을 찾아 둘러보고, 저녁식사 거리를 포장해 숙소로 들어가 맥주에 곁들여 먹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웠던 성 페터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우리가 미하엘 성당을 마지막 일정으로 둔 것은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찾아가다 다른 명소가 나와 다른 곳에 들어가고, 찾다 찾다... 찾지 못해 마지막 일정이 된 것이었다. 우습게도 미하엘 성당은 우리가 다리 아프고 힘들다고 30분 넘게 앉아 있었던 호프부르크 왕궁 입구 앞 벤치 뒤쪽에 위치해 있었다. 허탈하긴 했지만 웃음이 났다. 그래도 계획한 일정을 모두 다 이행했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성 미하엘 성당. 빈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며, 모차르트의 진혼미사곡 레퀴엠이 초연된 곳이다.


성 미하엘 성당의 문을 열고 발을 들어놓기가 무섭게,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내 몸 전체를 감싸 안았다. 저녁 미사 준비를 위해 오르간 연주자가 연습을 하고 있는 소리였다. 순간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유럽 여행 중 성당을 찾으면 그게 몇 번째 성당이 되었건 상관없이 매번 기도를 한다. 천주교 신자로서 당연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미하엘 성당에서는 그날 성 페터 성당 오르간 연주회에 가지 못해 아쉬워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오르간 소리에 감사기도부터 올렸다.


‘주님, 제 섭섭해하는 마음을 어떻게 이리 잘 아시고 제게 이렇게 오르간 소리를 듣게 하셨나요. 감사합니다. 유럽 와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가면 많이 속상할 것 같았는데 너무 감사해요.’


내 기도의 문장이 이렇게 끝난 순간... 내 귓가에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네게 필요하다 싶은 것은 내가 모두 베풀어준다. 그러니 너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쉽게 믿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일단 계속 기도를 이어나갔다. 무사히 이곳 빈에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하루도 사고 없이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여행 끝나는 날까지 친구랑 안 싸우고 무사히 여행 마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국에 있는 가족들 건강하게 해 주시고 제 사람들 모두 건강하게 행복하게 은총 내려주세요, 그리고 연로하신 내 할머니들 건강 더 나빠지지 않게 보살펴주세요... 여행 온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할만한 기도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기도는 좀 특별한 것이었다.


세례성사로 천주교인이 된 후, 나는 매 기도 때마다 어떤 사람의 마음속 평화를 위해 그가 세례 받길 바라는 기도를 빼놓지 않고 했다. 내가 아는 그는 워낙 완고한 이라 살아생전 세례를 받을 것 같지 않아 늘 ‘대세(죽음을 앞둔 병자에게 주는 세례)라도 좋다.’라는 전제를 붙이곤 했다. 그 정도로 세례성사를 통해 그의 마음에 평화가 오길 빌었다. 그날도 그 기도가 마지막에 붙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대세라도 좋으니, 그가 마음의 평화를 얻길... 그 순간 또다시 내 귓가에 또렷하게 들린 음성.


‘그 또한 내가 주관하니 너는 걱정할 것이 하나 없다.’


이미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 눈물이 터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고 있었지만 그 음성이 들리자 나는 대성통곡하기 시작했고, 눈이 퉁퉁 부어서 미하엘 성당을 나왔다.


성 미하엘 성당 내부. 내 마음을 위로해 준 파이프 오르간.






안다.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 나 조차도 그 당시엔 확신을 갖지 못했고 조심스러웠으니...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나는 그날 이후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산다. 내가 들은 것이 정말 신의 음성이었다면, 나의 신은 내게 필요한 것을 모두 베풀어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게 그 순간 가장 필요했던 것이 파이프 오르간 소리였듯, 순간순간 내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신의 음성이 아니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걱정을 한다고 안 될 일이 되고, 될 일이 안 되지는 않으니까. 30년 조금 넘게 살면서 보니,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지푸라기 같은 희망과 방법으로도 어려움을 헤쳐 나오며 사는 게 인생이더라.


아무려면 어떤가? 나 편한 대로 믿고, 나 편한 대로 살면 되는 것 아니겠나.



내 마음을 달래준 성 미하엘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