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대사
'마지막엔 항상 처음을 생각하게 되잖아'
처음에는 나에게 없는 걸 가진 그가 멋져 보이기도 했다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가족도 내 가족이 된다
그 사람의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다. 부지런하시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잘 키워내신 분들이다
그런 부모님을 가진 그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주변에서 다들 결혼하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이만하면 되었다, 내가 맞추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나와 평생 함께할 가족을 선택하는 일에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바란 결혼은 힘들다고 말하면 쓰다듬어주는 손, 가만히 들어주기, 고생했다는 한마디
퇴근하고 돌아오면 함께 만들어먹는 저녁, 산책하기, 함께 하는 취미 만들기
겨우 이런 것들이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사소하고 별 일 아닌 것들이 저 집에 가면 크고 별 일이 되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가 너무 그 사람의 모든 걸 받아 준거 아닐까?
만약에 내가 이렇게 했다면... 달라졌을까?
결국 다시 같은 문제에 부딪혔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는 단순히 그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의 전반적 태도와 내게 준 정서적 학대였음을 깨닫고
수많은 물음표는 마침표로 끝났다.
그 일이 아니었어도 우리 집에 대한 불만은 다른 일로 문제 삼아 터졌을 것이다
감사한 점은 그의 극단적인 성격 덕분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혼의사 확인을 위해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고 법원에서 만나는 날
역시나 그는 늦어진다. 혹시나 하루라도 더 보게 되는 재앙이 발생할까 잠시나마 두려워졌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기 위해 모였다
우리보다 어려 보이는 분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 정말 다양하다
줄 서서 이혼하는 모습이 제법 웃기다
이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 사람은 옆에서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고 나는 표정관리가 안된다. 한시라도 그와 법원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법원에서 이혼의사확인서를 교부받고 그는 역시나,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마지막을 말하면서 내 걱정을 해주는 그의 말들에 나에 대한 이해는 하나도 없는 게 참 웃기고 슬펐다
무슨 정신으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해방감, 안도감에 인생 처음 신호위반을 해버렸다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구청에 가 바쁘게 신고를 마쳤다
그와 물리적으로 떨어진 지 6개월, 결혼식을 하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의 결혼생활은 끝이 났다
결혼식날 보다 행복했다고 말하면 웃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