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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이혼신청서 제출

이혼 초보

by 제리

이혼이 처음이라, 순진하게도 내가 하고 싶으면 이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사람과 단 1분도 같이 있기 싫은데 이혼도 내 마음대로 못하다니. 억울했다






집을 나오고 난 후 처음으로 그를 마주했다

그 자리에서도 모든 게, 처음부터 다시 반복되었다 앉은자리에서 내리 6시간을 대화했다


여전히 그는 감정 과잉 상태였고, 그와 나는 지금까지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할 뿐이었다


그의 말들 속에는 비난만 있을 뿐 알맹이가 없었다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와서 다행히도 일이 많고 바빠서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어딘가 몰두할 수 있다는 건 감사했다.

꾸역꾸역 일을 해냈다


그 사람의 형제분이 소식을 듣고 내게 만나자며 여러 번 연락을 취했다.

(대신 나서주는 가족들이 있다는 게 조금 부럽기도 하다)

만나고 싶지도 않고, 같은 일은 지난번에도 겪었기에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흔들리기라도 할까 봐서기도 했다




출장을 가던 열차 안에서 상황과 마음을 정리한 길고 긴 메시지를 보내며 많이도 울었다





그가 내려놓길 꽤 오래 기다렸다.

어떻게 해도 내가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더니 결국은 협의 이혼하기 위해 법원을 가기로 하고 날을 잡았다





재방문으로 법원도 그 사람도 다시 마주해야 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 놓친 건 없는지 수십 번을 꼼꼼하게 검색하고 확인했다




다시는 그 사람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협의이혼은 부부가 함께 가서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정말 거지 같은 법이다



약속한 날, 그 사람이 마음이 돌변해서 법원에 나타나지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했던 것 같다

기다리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기 위해 법원에 오는 걸 보고 놀랐다


신청서를 제출하고, 기일에 맞춰 날짜와 시간을 안내받고 나왔다




잠깐의 대화도 싫었지만

몇 개월 동안 궁금한 게 많아진 그 사람은 여전히 본인의 말들을 쏟아낸다


미련도 많아 보였다. 본인이 이랬다면 남았을건지, 자신의 성격 때문인지 묻는다


짧은 결혼생활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서 정말 0.00001만큼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오늘 이렇게 평안한 가을아침에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불행 중 다행으로 자녀가 없어 이혼숙려기간은 1개월





숙려기간 이후 법원에 이혼의사 확인이 남았지만 조금씩 끝이 보인다

그래도 언제 그 사람이 돌변할지 모르니 너무 들뜨지는 않기로 한다


오랜만에 편한 잠을 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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