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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당하려 했던 것

by 제리

당신은 당신의 얘기를 끊임없이 들어주기를 원했지만 당신도 내게 그래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말 잘 듣고, 자극하지 않고, 당신 기분에 맞춰주는 사람으로 남아주길 바랐지만

그러기에 나는 생각이 깊고 감정이 풍부하며 상호작용을 원하는 사람이었기에 갈등이 생겼다


나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때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당신은 서로의 바닥을 보고 싶어 했다


내가 바라는 것들이 당신에게는 단 하나도 없었다






누가 들으면 겨우 그것 때문에 이혼했냐 할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그 사람이 듣고 상처받았던 아빠의 말실수 때문이 아니고 그 일을 풀어내는(결국 풀어지지 못한) 과정이었다


'너는 네 아빠 딸이니까 이 정도는 당해도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가 평생의 가족으로 선택한 사람이라니.

그래서 그동안 나를 그런 식으로 대했던 거구나. 모든 게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사람을 선택한 내가 맞았고, 선택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견뎌왔는데

하지만 그건 완전히 틀린 거였다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음을, 이제는 내가 감당 가능한 선을 넘었다는 답이 내려지니 오히려 모든 게 명확해졌다



내가 병신이라 당신에게 무한한 이해와 상냥함을 준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배려받고 싶은 만큼 배려하는 사람이어서, 당신도 언젠가 그렇게 해줄 거라 생각했었다



닿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사랑한 나의 배려와 이해는 당신이 증오하는 나의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언젠가 알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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