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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Aug 13. 2024

비 오는 날 굳은 얼굴들

8월 13일 출근길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30분 전 일어나 확인했을 때는 부슬부슬 내렸는데 비는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태풍 카눈 영향 때문이다. 카눈은 현재 통영 남쪽 100킬로미터 해상에서 시속 22킬로미터의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어제부터 전국이 긴장하고 있다.


  우산을 펼쳐 들고 길을 나섰다. 멀리 보이는 사거리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뛰어 가려다 비가 오고 있어 그냥 걸었다. 여기저기 물 웅덩이를 피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녹색 신호등 아래로 숫자가 나오고 횡단보도로 들어섰을 때는 미처 20초가 남지 않았다.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걸어가 횡단보도 끝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숫자가 사라지고 신호등은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보도에 들어섰다. 우회전을 하려고 깜빡이를 켜고 있던 자동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려줄 줄 아는 운전자였다.


  버스 정거장 전광판에 OOO번 버스 대기시간이 9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걸을까?', '비 오는데...' 잠깐의 갈등 후에 윗 쪽 사거리까지 걷기로 했다. 완만한 오름 경사를 3분 정도 걸었다. 빗발이 거세지는 않았지만 보도는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물고임이 있어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사거리에서 직진하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직교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다. 한 번 더 건너야 한다. 이제 다른 번호의 버스가 뒤쪽에서 올 것이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버스가 와서 사거리 앞에서 멈춰 섰다. 정거장은 60미터 정도 멀리 있고 신호가 바뀌면 버스를 놓칠 수 있다!

  '어쩐다?'

  같은 마음의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한 사람이 후루룩 건너가더니 또 한 사람이 좌우를 살피고는 뛰어 건너갔다. 왕복 2차선의 횡단보도는 길지 않았다. 나도 건너갔다. 이런! 건너가서도 신호등은 바뀌지 않고 다른 쪽-그러니까 내가 무단횡단한 횡단보도와 직교하는-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었다. 버스는 당연히 움직이지 않았다. 뜬금없이 서두른 꼴이 되었다. 정거장에 도착했고 곧이어 버스도 도착했다. 비가 오는 날이어서 그런 것인지 평시에도 그런 것인지 버스의 앞 쪽은 사람들로 빈틈없어 보이고 출구 주변도 혼잡했다. 출구로 올라가 오른편에 겨우 끼어 들어섰다. 출구와 버스 뒤쪽을 바라보는 어정쩡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들이 크게 다가왔다. 앉아서 앞을 보고 있는 사람들 예닐곱 명이 눈앞으로 쑤욱 들어온 것이다. 유리창은 온도차와 높은 습도로 허연 김이 서려 있었다. 차가운 천정 조명이 유리창에 반사되며 실내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여러 얼굴들과 마주침은 시선이 교차하든 말든 불편했다.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은 굳은 표정의 얼굴들. 힐끔힐끔 쳐다보게 되었다. 남자 여자가 반반은 될 듯하고 개중에는 이 삼십 대도 끼어 있고 한데,

  '모두 굳어 있는 느낌...'


  정수리가 대머리인 마르고 구릿빛 얼굴의 눈빛이 부리부리한 오십 대 남성이 두드러져 보여서 인지, 비가 와서 아니면 원래 아침 얼굴은 다들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매번 이용하는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를 타서 사람들이 낯설어 그렇게 굳어 보였던 것일까?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나도 굳은 얼굴인가?' 하는 되물음 속에 굳은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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