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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Aug 16. 2024

30대 세 남자와 노랑 우산 걸

8월 16일 출근길

  태풍 카눈이 한반도 중앙을 지나며 경상도와 충북, 강원도와 경기도에 많은 비를 쏟고 지나갔다. 아침에 빗줄기는 잦아들었지만 아직까지 바람에 흩뿌려지며 차갑게 부딪쳤다. 우산을 넓게 잡고 몸을 웅크리고 나섰다. 비바람이 바지를 때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정거장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의 배가 보였는데 둥그렇고 볼록했다. 뒤이어 남자가 이어왔는데 그 남자의 배는 배 전체가 넓게 나오고 허리에서 뒤쪽으로 뱃살이 비죽이 나와있었다. 둥근 배, 넓은 배, 띠 두른 배, 불룩한 배, 뽈록한 배, 아래 불룩 배, 처진 배, 처져 둥근 배. 남자에게 배는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


  열차를 탔다. 오늘은 한산한 편이었다. 출입구 옆에 기대어 섰다.

  다음 정거장에서 30대는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탑승해서 줄의자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남자는 가슴께에서 위아래로 색깔이 나뉘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위는 연하늘색이고 아래는 윤기 없는 진한 파란색의 라운드 반팔티였다. 그는 티셔츠를 바지 바깥으로 해서 입었다. 바지는 희뿌윰하니 녹색 면바지였다. 바지 위쪽으로 둥그스름한 배가 보였다. 남자는 검은색의 나** 스니커즈를 신고 오른손으로 장우산을 잡고 바닥에 지지했다. 왼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들고는 가운데 손가락을 휴대전화 뒤편 고리에 끼고 있었다. 중간길이의 더벅머리에 볼은 살짝 처져 팔자주름이 옅게 보였고 입의 양끝은 처진 모습이었다. 귀에는 검고 동그란 유명 회사의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그는 줄곧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남자 뒤쪽으로 다른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있었다. 짙은 파란색 폴로 반팔티를 역시 바지 바깥으로 입고 있었다. 살짝 짧은 베이지색 인조견 바지에 앞부분과 옆으로 가죽을 덧댄 흰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남자는 볼록한 배에 체격이 있어 약간 둔스러워 보였다. 짧게 붙은 머리는 이발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지 귀와 목으로 이어지는 머리카락 경계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귀에는 짧은 막대가 붙은 흰색의 유명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왼손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은 휴대전화와 장우산 고리를 같이 잡고 있었다. 장우산은 바닥으로 향했는데 그 끝부분만이 열차의 흔들림에 따라 흔들거리며 살짝살짝 보였다. 남자의 불룩한 볼에 웃음기가 계속 있었다. 무언가 즐거운 것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안쪽 옆으로 30대인 듯한 또 한 남자가 서있었다. 검은색 라운드 반팔티를, 이 남자도 청바지 위로 해서 입고 있었다. 검은색 스니커즈에 검은색 인조가죽 슬링백을 메고 앞의 남자와 엇비슷한 중간길이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약간 긴 막대가 달린 흰색 유명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그 외에는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뭐냐, 다들 비슷비슷하잖아…’

  이 세상이 무채색의 나라라면 이들 세 사람은 형 동생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체구, 비만도, 머리 스타일, 실루엣, 자세, 복색, 휴대전화와 이어폰 등등. 남자들(의 배)은 다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했다. 오고 가는 남자들을 둘러봐도 몇몇 다른 모습의 남자들이 있긴 지만 30대 남자들은 어떤 전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는 돌곶이역 개찰구를 지나며 내 앞에서 노랑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걸어가는 여자를 보았다.

  '우산을 메다니!'

  신선한 방식이다. 여자들, 특히 젊은 여자들은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자는 크림색 반바지에 동색의 맨투맨 상의를 입고 있었다. 구릿빛 근육질의 튼실해 보이는 허벅지와 종아리 아래로 크** 고무 샌들을 신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액세서리가 샌들에 다채롭게 박혀 있었다. 그녀는 데님 느낌의 에코 가방과 선명한 노랑 우산을 왼쪽 어깨에 같이 메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갈 때마다 바람을 일으키듯 머리카락이 일어났다. 머리를 흔들 때는 머릿결이 좌우로 펼쳐진 후 물결치듯이 춤을 추었다. 다부진 어깨에 거침없는 걸음걸이. 변화를 추동하는 당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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