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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Aug 20. 2024

완벽한 도시 先녀

8월 20일 출근길

  어깨가방(숄더백)과 휴대전화와 지갑. 보통 내가 가지고 다니는 전부다. 가방에는 책 한 권이 들어 있다. 등가방에 태블릿피씨를 넣어 다니거나 짐꾸러미용 종이가방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빈손으로 다니는 무료함과 출근시간을 그냥 보내 버리는 게 아까워서 책 한 권을 가지고 다니며 읽는다. 물론 휴대전화로 주로 뉴스를 보며 출근길을 보내기도 한다.

  어떨 때는 가방에 책 한 권 밖에 넣지 않았는데도 들고 다니기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뭘 버릇처럼 들고 다니냐...'

  되뇌면서도 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가방을 가지고 출근한다.


  오늘은 비가 예고됐고 나는 오늘도 신당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탔다. 열차 안에 자리 잡은 사람들, 대개 비슷비슷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들의 가방은 등가방이거나 어깨가방, 간혹 슬링백을 메고 있었다. 한 때 많이 유행한 손에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사라졌다고 하기보다는 얼마 전부터 어깨 끈을 이용해 메고 다니는 것으로 바뀌었다. 남성 패션의 편리함이란! 몇몇 주로 장년의 남자들이 가방 없이 단출하게 우산만 들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여자들은 거의 모두 가방을 지니고 있었다. 핸드백이나 어깨가방을 주로 지니고 있었고 아니면 슬링백이나 에코백이라도 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녀 할 것 없이 휴대전화를 들고 적지 않게 이어폰을 끼고 오늘은 우산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아직까지 마스크도 열에 세네 명은 착용하고 있었다.


  줄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비슷했다. 유독 두 여자를 빼놓고는. 한 여자는 체형보다 큰 회색 맨투맨 긴 팔 상의에 물 빠진 데님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발은 흰색의 가벼운 운동화 차림이었다. 머리는 뒤로 말아 집게 머리핀으로 단정하게 고정했다. 검은색 어깨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어깨가방 위에는 비닐가방이 하나 더 얹어져 있었다. 그 위에 손선풍기가 있고 한 손에는 휴대폰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장우산을 곧게 짚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얼굴은 정면을 향하여 눈을 감고 있었다. 상념에 잠겨 있는 것인지 표정변화 없이 지그시 눈만 감은 얼굴이었다. 

  그 옆의 다른 여자는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스타일이었다. 짙은 검은색 머리칼에 검은색 반팔 상의와 검은색 치마를 입었다. 핸드백도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검다고 해야 할 장화를 신었다. 올해 갑자기 패션 아이템이 되어 한참 유행하고 있는 장화였다. 여자는 왼손으로 휴대전화를 잡고 계속 살펴보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오른손으로는 우산을 잡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니 왼손 팔목에는 스마트 시계가 오른손 팔목에는 마스크가 끼워져 있었다! 목 부분으로 시선을 움직였을 때,

  '최고구나!' 

  감탄의 느낌이 내 머리 뒤로 선명하게 지나쳤다. 목에는 처음 언뜻 보기에 목걸이형 블루투스 이어폰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블루투스 이어폰보다는 전체적으로 굵고 원형의 끝 부분이 둥그렇게 이어폰보다 많이 크고 그물망 같은 형태였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잖아...' 

  이어폰일리 없었다. 흰색의 그것은 아마도 목걸이형 선풍기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휴대전화로 검색해 보니 비슷한 이미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정녕 완벽하고도 빠르게 적응하는 도시 先녀들이었다. 그런데 거북함이 일어났다. 부지런히 트렌드를 쫓아 이것저것 다 갖춘 모습을 보며 갑갑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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