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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Aug 23. 2024

다정다감한 근로자부부

8월 23일 출근길

  이제 맞벌이는 기본이다. 가족임금 개념은 거의 사라졌고 맞벌이를 해야 금전적으로 살 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욕구가 커진 것도 있지만. 언뜻 생각해 보면 맞벌이는 IMF를 겪으며 악화된 노동강도에 비해 훨씬 더 강한 노동을 요구한다. 남자에게는 가사 노동과 양육분담을, 여자에게는 직장에서의 풀타임 노동을 추가로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부부의 고정된 성역할은 많이 감소되었다. 이래저래 육아까지 감당하는 시기는 고통과 고난으로 점철되고 고스란히 근로자 부부의 생각, 얼굴, 몸짓, 마음에 표식을 남긴다.


  한 남녀가 얘기를 나누며 버스정류장으로 다가왔다. '부부겠지?' 그들은 직장에서의 동료 관계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버스가 왔다. 나는 뒤쪽 통로 중간에 자리 잡았다. 여자는 일인좌석 맨 끝에 앉았고 남자는 그 앞에서 약간 떨어져 손잡이를 잡고 매달린 듯한 자세로 서있었다. 나와는 2미터 남짓 떨어진 거리였다.

  남자는 연노랑 반팔 폴로티에 연회색 면바지를 입고 색 바랜 흰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파마머리에 얼굴은 살이 붙어 둥글었다. 검은색의 굵은 다리에 안경테가 반투명인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뭐가 즐거운지 입가에는 미소가 흘러나왔다. 여자는 옅고 얇은 노랑 반팔 상의에 검은색 바지, 베이지의 굽 낮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머리칼은 어깨를 살짝 덮는 길이였다. 움츠린 듯 올라간 어깨에 상체는 두툼한 편이었다. 남자는 왼손에 휴대전화를 잡고, 팔목에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었다. 웃음과 미소를 번갈아 지으며 여자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버스에서 내려 둘이 앞서 걸어갔다. 여자는 머리를 정돈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약간 산발로 가지런하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프**의 큼직한 가방이었지만 내용물은 적어 보였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무겁지 않아, 한 무리 속에서 흘러가듯 탁탁탁탁 툭툭툭툭 걸어 나갔다. 남녀의 옷차림과 걸음걸이에 긴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다음 주에..."

  "확인해야... 용량..."

  남녀는 내가 서있는 지하철 1-3번 출입구를 지나가며 얘기를 계속했다. "000 메가였어." 남자가 말했다.

  'IT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둥글게 살이 있는 얼굴로 살짝 윤기 빠진 피부에 적당하게 화장을 한 얼굴이었다. 남자는 약간 충혈된 눈이었다. 그들은 1-2번 출입구로 탑승했다. 

  열차에 탑승해서도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출입구에 붙어 서서 여자는 수직 난간에 기대었고 그 옆에 남자는 신체가 닿지 않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섰다. 남자는 뭐라 뭐라 설명을 하고 여자는 대응을 하는데 여자의 얼굴에도 미소와 웃음이 담겨 있었다. 신당역에서 환승할 때까지 그들의 대화는 줄곧 계속되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혹시, 잠실?'

  그들은 2호선 4-3번 출입구에서 탑승했다. 남녀는 6호선 열차에서 자리 잡은 것과 비슷하게 자리 잡았다. 이제 여자는 게임을 하고 남자는 이것저것 검색을 하고 있었다.

  "... 나이 있어 보여, 요즘은 다들 그래..."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답을 하며 여자를 쳐다보곤 다시 휴대전화를 하고 여자도 다시 게임을 했다.

  "아줌마..."

  "그렇지, 그렇지."

  "애기, 애기 위주로..., 나도 가고 싶고..."

  여자는 보모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 같았고, 여자의 말에 남자는 뚜렷한 답이 없어 보였다. 잠시 후 뭐라 뭐라 남자가 얘기했고 이것저것 여자가 대답했다.  소리는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다가 한숨을 쉬는 듯도 했다. 정지된 모습처럼 시간이 흐르고 흐르더니 남자가 다른 얘기를 했다.

  "아, 여기... 봤어..."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설명을 했고 여자는 긍정의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보였다. 그들은 함께 내렸다. 내가 내리는 역 한 정거장 전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잘 살아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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