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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Aug 27. 2024

지하 공간이든 지상이든, 관심 없어

8월 27일 출근길

  '지하'는 좋을 수 없는 장소다. 핍박을 받아 피신하고 숨을 때, 반란의 무리들이 기회를 도모할 때 이용하는 장소이며 공격할 때 활용하는 수단이 아닌가. 아니면 죽어서 가는 곳이거나. 지하세계를 환상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지만 지하세계라 하면 암흑가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돌곶이역에서 지하로 내려간다. 모두 백여 개의 계단을 내려간다. 지하 몇 미터쯤일 까. 계단도 설치기준이 있어 계단 하나의 높이는 대략 18센티미터로 설치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승강장은 지하로 18미터 정도 깊이가 된다. 나는 지하 18미터 속에서 날마다 출근한다.


  장마가 끝났다고 하는데 아직 비가 오고 있다. 오늘 아침도 비가 내렸다. 요즘 사람들은 장우산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객실을 둘러보니 열에 여덟은 장우산이었다. 손에 잡고 팔목이나 다른 곳에 걸고 하기에 편해서인 듯하다. 눈앞에 보이는 장면은 우산 때문인지 내 느낌 때문인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열차 내부의 조명 빛은 차갑고 어두웠다. 형광등이 내뿜는 색온도가 낮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시감을 포함하여 오감이 지하세계에 적응되었고 어둑한 공간, 인조 불빛 속 열차에 실려 역에서 역으로 하나하나 지나가고 있었다.

  '어둠밖에 없군'

  역과 역 사이, 창밖으로는 푸르스름한 조명만 거슬러 지나갔다. 이 외에는 창밖으로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역을 지나갈 때마다 지하터널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유사했다. 역을 출발하며,

  “이잉잉잉 웡웡웡웡, 터턱 턱 턱 턱 탁 탁 탁 탁.”

  소리가 반복되더니, 이내 고음으로,

  “이잉잉잉 히힝힝힝, 처걱처걱처걱처걱.”

  굉음 소리가 지하철과 같이 달렸다. 이어서 빠르게,

  “터덕터덕터덕터덕.”

  하는 소리가 계속되다가,

  “터억터억 터어억터어억, 끄윽 끄으으윽 윽.”

  하며 다음역에 도착했다. 그다음역으로 가면서 일어나는 소리도 비슷했다. 지하터널의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당역에서 갈아탔다. 지하는 계속되었다. 오른쪽 자리에 빈자리가 있어 앉을 수 있었다. 왼쪽으로 싱글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색 구두에 검은색 양말까지 신었다. 머리칼도 단정한 파마머리였다. 그는 등가방을 다리사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앞으로 바꿔 메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은 것이었다. 장우산은 출입구 옆 구석에 기대 세웠다. 등가방이 옆으로 쓰러지려 하자 다시 다리에 기대어 세웠다.

  '얼마나 무겁길래…'

  목 뒷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나올 듯한 표정이었다.

  한양대를 출발하며 지하철은 지상으로 나왔다. 승객은 많지 않아 정면으로 보이는 창문은 그 크기만큼 밖을 볼 수 있었다. 맨 먼저 중랑천과 다리가 보였고 이어서 내부순환로와 합쳐지는 동부간선도로의 끄트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차도 위에는 햇빛을 번뜩번뜩 반사하는 차량들로 꽉 차 있었다. 전혀 움직임이 없는 장면이었다.

  '저 속에 있을 때 기분… 알지…'

  다음 역을 출발하자 정면에 앉은 두 사람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 뒤로 아파트들이 첩첩이 겹쳐서 지나갔다. 성수역이었다. 건대입구역으로 가면서 규모 있는 오피스 건물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이제 창문 밖은 듬성듬성 가려져 절반이 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구의역으로 향하면서 자잘한 상업건물들이 창 아래에서 지나가고 강변역에 접어들면서는 큰 건물들이 촤아악 창문을 채우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한강이 나타났다.

  '아, 한강…!'

  회색 구름이 낮고 두텁게 머리 위까지 내려앉았고 물결은 저 먼 곳 아래에서 일렁거렸다.


  정면에 앉은 사람이나 이쪽에 앉은 사람이나 서있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창 밖에 눈길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정면으로 검은 반팔에 미색 스포츠 바지와 때 묻은 운동화를 신은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의 크로스백인지 슬링백인지 모를 가방의 앞부분에 십자모양의 잠금쇠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낙하산 체결 금구 같은 단단한 톱니 모양이었다. 그는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키들키들 거리며 웃음 속에 빠져 허공에서 유영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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