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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Jul 12. 2024

천사를 만들어 준 어느 노인

7월 12일 출근길

 ‘우리들 쪽에서는 전철 속이 확실하게 보였지만 승객들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하철 승객은 어느 누구도 바깥 풍경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지하철이란 사람들에게 그저 도시 공간을 유효하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도 가슴을 두근거리며 지하철에 타거나 하지는 않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




  다른 때와 다름없이 OOO번 버스를 탔다. OOO번 버스의 배차 간격은 들쭉날쭉이다. 집에서 나와 사거리에 못 미쳐 내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보게 되면 '다음은 언제 오려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올라온다. 버스정거장 전광판의 대기시간이 7분을 가리키면 기다릴지 말지 결정장애에 빠진다. 앞쪽으로 두 정거장을 거슬러 걸어가면 덜 기다리고 다른 버스를 탈 수 있다. 그곳까지는 3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곳에서 3분을 기다리게 되면 그게 그것이니 매번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들쭉날쭉한 배차 간격 때문인지 버스 안이 붐볐다. 출구 쪽에 있기보다는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2인 좌석 옆 통로에서 손잡이를 잡고 기대섰다. 버스는 완만한 경사를 올라 좌회전을 했다. 몸이 한 차례 오른편으로 쏠렸다가 돌아온다. 승객들도, 손잡이도 기울었다가 돌아온다.


  앞쪽에서 뭐라 뭐라 웅얼하는 소리가 들렸다.

  "........"

  "네? 네?"

  "........"

  "이따가 내릴 때 앞쪽으로 가서 내시면 돼요."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거칠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평범한 목소리였다. 

  "........"

  "이따가 내리실 때 내시면 돼요오."

  어떤 노인인지 요금 내는 것을 깜박하고 탔나 보다. 아니, 출구로 해서 올라와서는 승객들을 헤치고 나아가 요금을 낼 엄두를 못 냈을 수도 있었다.

  "........"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어떤 생각이 났는지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승객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만요,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남자는 양해의 말을 꺼내며 승객들 사이를 삐질삐질 움직여 요금을 내고 돌아왔다.


  "........"

  "네?"

  "........"

  "네..., 청량리 한 정거장 전에서 내리시면 돼요."

  노인은 중년의 남자에게 행선지를 물어본 듯했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정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보기엔 출구 주변이 너무 빡빡했다.

  "........"

  "네에, 한 정거장 전이에요."

  버스는 사거리를 한 번 더 지나고 활처럼 오른편으로 기울며 낮은 언덕을 올라가고 내려갔다. 늘 다니는 길이다.

  “… 한 정거장 전에서 내리시면 돼요-"

  버스에서 내리는 내 뒤편으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노인은 천사를 알아보았을까? 노인이 첫 질문을 던졌을 때 중년 남자는 숨겨 놓은 천사의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천사는 그냥 나타나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돌곶이역으로 걸어가며 걸음을 늦추었다. 내 앞으로 사람들이 서두르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휴대폰을 보며 위태롭게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삼십 명의 이 사람들 중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있을까? 중년의 남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반듯한 걸음, 정면을 응시하는 머리, 단정한 옷차림. 

  '저 사람일까?'

  '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돌곶이역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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