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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Jul 16. 2024

대기시간 6분에 뛰어가는 여자

7월 16일 출근길

  내가 버스를 타는 버스정류장과 다음 정류장까지의 거리는 155미터가 된다. 좀 짧은 편이다. 주변 정거장들 간의 거리를 재어보니 300미터에서 400미터 정도가 된다. 하나 뒤쪽에 있는 정류장과는 125미터 떨어져 있다. 앞뒤를 합쳐서 280미터 밖에 되지 않으니 한 개 정거장이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항간에는 버스회사에서 이 정류장을 없앴다가 민원 때문에 다시 만들게 되었다는 후문을 들은 적도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OOO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시간이 5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오늘은 좀 기다리겠군!'

  기다리기로 했다. 신호등이 바뀌어 ◇◇◇번 버스가 왔다. '치익-' 소리를 내며 버스가 섰는데 30미터쯤 뒤에서 한 여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쿵쿵 쿵쿵 뛰는 모습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전력질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자는 흰색 면티에 검은색 얇은 카디건을 걸쳤고 검은색 계열의 바지를 입었다. 귀 밑 길이의 짧고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둥그렇고 살이 있는 얼굴은 눈가며 입가에 주름이 지었고 눈 밑이나 볼에 지방살이 있어 50살 내외는 되어 보였다. 핸드백을 메고 비닐가방을 말아 손에 쥐고 뛰어오고 있었다.

  여자가 절반쯤 왔을 때,

  "우웅웅웅 궝궝긍궝..."

  버스가 출발했다. 중년여자는 성급히 턱턱 턱 터덕 신발 소리를 내며 속도를 줄이더니 걸음으로 바꾸었다. 급작스러운 뜀박질에 숨이 차는지 입을 벌리고 얼굴에는 열기가 보였다. 눈빛은 강렬하게 정면을 향했는데 나를 보는 듯도 하여 눈길을 돌렸다. 다시 돌아보니 여자는 앞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앞쪽으로 돌아보니 ◇◇◇번 버스가 횡단보도 앞에서 정차했다. ◇◇◇번 버스가 횡단보도를 지나는지 지나지 않는지 지켜보았던 것이다.


  여자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음 ◇◇◇번 버스의 대기시간은 6분이었다. 횡단보도까지 거리는 110미터였다. 뒤뚱뒤뚱거리며 착착 착착 발소리를 내며 뛰어갔다. 빠르게 멀어져 갔다.

  '어떻게 될까?'

  상황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여자는 버스를 얼추 쫓아간 듯했다. 여자가 버스와 중첩되어 보였다. 거의 90미터 지점까지 쫓아간 여자의 뜀박질이 갑자기 느려졌다. 완만하게 오르는 길이었고 90미터를 뛰어가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버스는 신호가 바뀌자 움직여서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여자는 이제 상관없는 듯 그냥 걷고 있었다. 버스는 바로 출발했다. 여자는 정류장까지 20여 미터를 남겨 두었을 것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지만 여자의 한탄 같은 호흡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 하아 하아 하아아, 아!'


  생각해 보면 지체되는 시간은 버스 6분, 지하철 3분, 환승하는데 3분으로 최대 12분이다. 12분 때문에 전력을 다해야 하다니! 출근길은 조급함에 눌려있는 길이다.


  OOO번 버스가 왔다. 궁금함에 다음 정거장에서 창문 너머로 그 여자를 찾아보았다. 언뜻 보이더니 뒤쪽으로 사라졌다. 눈으로 좇아가 보니 뒤에 ◇◇◇번 버스가 와 있었다. 여자는 그 버스를 탔을 것이다.


  돌곶이역에 내려 대합실로 내려갔다. 사람들 대여섯 명이 뛰어가고 있었다. 전광판을 봤다. 7시 47분, 전광판에는 돌곶이역 표시 바로 근접해서 열차가 표시되고 있었다.

  '얄미워...'

  그냥 걸어가다가 개찰구를 지나며 조급함을 못 이기고 뛰었다. 계단에 다다라 계단을 올라오는 승객들의 끝을 보고는 다시 걸음으로 바꾸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계단 옆 아래쪽으로 스크린도어를 닫는 지하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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