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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Jul 26. 2024

지하철 어정쩡 자리 잡기

7월 26일 출근길

  신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 내가 갈아타는 위치는 8-3번 스크린도어 앞이다. 노약자 표시가 있는 곳은 피한다. 의자에 앉을 생각이 없기도 하거니와 노약자석 주변은 흔들거림이 심해서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다른 쪽을 이용했다. 8-3번 스크린도어 앞은 붐비지 않는 편이다. 첫 번째로 서있게 되거나 내 앞으로 한 명 정도가 서있곤 한다.


  열차가 역사로 들어왔다.

  "으잉 잉- 특 특 특."

  고음의 둔탁한 금속성 소리를 내며 내 앞을 지나갔다. 8-3번 스크린도어는 열차가 빠른 속도로 들어오는 승강장 뒤쪽이어서 소음과 풍압이 제법 생겼다. 스크린도어가 풍압에 차악 밀렸다. 선로 쪽의 공간이 빵빵해지는 느낌이었다.


  소음이 멀어지며 잦아들더니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열차 내부에 승객들은 적당했다. 빈자리는 없었다. 양쪽 좌석 앞으로 사람들이 어깨를 줄지어 서 있었다. 어느 곳에 끼어들 수 있을까 생각하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람사이 간격은 촘촘하면서도 제 멋대로였다. 서로 조금만 더 떨어져서 간격이 벌어져 있으면 그 사이로 끼어들어 자리 잡을 수 있을 텐데 제각각의 간격은 섣불리 끼어들지 못하고 아쉬움만 일으켰다.


  주변을 살펴보니 적당한 틈새가 보였다. 등을 맞대고 서있는 사람들 사이를 조심조심 움직여서 그 틈새에 다가섰다. 다가가서 보니 웬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다리를 꼬고 엉덩이를 내밀고 앉아 다리를 길게 뻗고 있었다.

  '쯥, 다른 데로 움직여야 하나?'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올라오고 의자 쪽으로 다가서지도 못한 채 내 몸의 반은 줄에서 튀어나와 서있게 되었다. 뒤따르는 사람들은 나를 지나치려 하고 어정쩡한 위치의 나와 부대끼며 지나갔다. 내 어깨가방을 툭툭 치며 지나갔다. 불편했다. 속에서 짜증이 일어났다.

  정면에 앉은 사람을 주목하여 쳐다봤다. 휴대전화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살짝 누운 휴대폰 화면에는 알록달록하고 동글동글한 것들이 또는 세모나 네모의 모양들이 주인의 엄지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다가 터지고 사라지고 있었다.

  '게임은 죄가 없는데...'

  그런 와중에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사람이 나를 지나가려고 쳐다보다가 좁은 틈새를 보고는 머뭇거렸다. 그 뒤로 또 한 사람이 고개를 비죽비죽 뽑아내고 있었다.


  열차 안에 편한 자리는 없다. 이기심을 버리기 전까지는. 심지어 앉아있는 자리일지라도.

  출입구에서 좀 더 안쪽으로 움직이려는 사람들은, 아마도 출입구의 숨 막히는 밀집에서 벗어나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은, 그리고 운이 좋다면 몇 정거장이라도 앉아 가고 싶어 하는 그런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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