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장준 Mar 03. 2017

아, 저는 세일즈가 아닙니다.

세일즈가 아닌 게 자랑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경향하우징페어에 갔었다. 각종 건축자재, 기계, 내외장재, 단열재, 냉난방, 조경 설비 등 하드웨어 제품뿐만 아니라 홈 시큐리티, IoT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다. 900여 개 정도의 관련 기업에서 참가하고 약 20만여 명의 참관객이 왔다 간다고 하는데, 기업의 비즈니스 측면에서 본다면 전형적인 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이다. 전시회의 규모나 지역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일반적인 3m x 3m짜리 조립부스 1개당 2백만 원에서 3백만 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가장 작은 모듈이 그 정도니 보통 2~3개 모듈을 차지한다 치고, 거기에 사용될 카탈로그, 브로셔 등 마케팅 콜레트럴(marketing collateral) 그리고 포스터나 엑스배너와 같은 POP물 등을 마케팅 대행사에 맡기고, 회사 인력 3~4명이 배치된다고 보면 이래저래 전시회 한 번 참가하는데 MDF(Market Development Fund)가 수천 만원이 들어간다.


우리 집은 굉장히 오래된 주택이라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서 외벽 손질이 필요하다. 그냥 페인트칠을 하자니 좀 아쉽고 일꾼의 지원 없이 있더라도 저렴하게 외장재 타일 방식이 혹시 없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차저차 해서 간 것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대기업의 큰 부스에서 나눠주는 기념품(giveaway)을 일단 한아름 챙기고 나서, 나는 어떤 중소기업의 주택 창문용 접이식 햇빛 가리개를 발견했다. 1차적으로 찾던 제품은 아니지만 평소에 관심이 있던 터라 저렴만 하다면 페인트칠도 하고 창문마다 예쁘게 원색의 햇빛 가리개를 달면 집이 고급지게 변할 것 같다. 나는 물었다. 오늘은 주말이라 내가 고객이다.


"이거 얼마예요?"

"......"


음,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 나는 명찰을 단 직원으로부터 원하는 답변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 다시 물었다.


"이 햇빛 가리개는 어떻게 팔아요? 길이에 따라 매기시나요? 얼마나 할까요?"


약간 귀여운 목소리로 친절히 물어봤다. 이 정도면 답을 알려주고 시험문제를 내는 격이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연다.


"아, 저는 영업이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대화가 중단됐다. 대단히 놀라운 답변이다. 어쩌면 대단히 창의적인 답변일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설마 물어보는 사람이 뭔가 잘못 물어봤겠지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어딨겠냐고 의아해하겠지만, 정말 장담하건대 직장을 다니다가 혹은 사업을 하다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여러 업체들과 만나보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 과연 왜 그럴까? 왜 그 회사 직원은 자기네 회사 제품의 가격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물론 B2B 비즈니스를 해 본 사람이라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B2B의 경우에는 각 채널이나 티어(tier)마다 가격정책이 다를 수 있고, 따라서 함부로 가격을 오픈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명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사내에 고객을 대하는 프로세스가 구축되어 있는 기업이라면, 본인이 세일즈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런 정도의 예상 답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저희가 채널 정책이 다양하고 프로모션도 종종 있어서 가격이 용도나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책정됩니다만, 그런데 혹시 어느 용도로 쓰실 건가요? 얼마만큼이 필요하신 가요? 접이식이 있고 고정식이 있는데 혹시 생각하시던 것은 있으세요? 시공할 위치는 어디신 가요? 주택인가요? 빌딩인가요? 몇 층이세요? 예산은 얼마 정도로 보고 계신지요? (중략) 더 자세한 설명은 명함이나 연락처를 주시면 저희 전문 상담원을 통해서 전화가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세요?"


이것이 꼭 백점 짜리 답안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질문을 통해서 고객으로부터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전 모릅니다'라고 답변하는 직원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더군다나 고객이 가격을 묻는 행위는 연애로 따지면 '너 나 좋아해?' 정도의 메가톤급 구애 행위에 해당한다. 방금 그 회사는 소중한 잠재 고객을 놓쳤다. 내가 세일즈가 아닌게 자랑이 아니다. 아, 저 직원은 자기네 제품이 얼만지도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어차피 회사가 오래지 않아 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 오랫동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겠다. / 스타트업세일즈연구소 유장준


매거진의 이전글 잠재 고객은 이자처럼 불리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