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장준 Mar 05. 2017

세일즈를 거부하는 CEO

그들은 고객에게 절대 질문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직원들이 당신의 고객을 내쫓고 있다면 교육을 시키면 된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이 얼마든지 개선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HRD(Human Resource Development)이다. 혹시 교육으로도 잘 되지 않는다면 퇴근 후에 잠깐 불러 어르고 달래서 다른 직장을 주선해 주면 된다. (무턱대고 흥분해서 해고하다간 큰 코 다친다. 해고라는 영역으로 접근할 때는 반드시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기를 추천한다. 이 주제에 대해선 다른 칼럼에서 별도로 다루겠다.) 사실 '교육을 시킨다', '훈육한다'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는 않다. 누가 누굴 가르치겠나? 단언컨대 직원들이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CEO가 직원들에게 고객 대응 프로세스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가이드한 적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자연스럽게 어느 스타트업 CEO를 만났던 경험담으로 넘어가 볼까 한다. 한 번은 스타트업 네트워킹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파티는 아주 예쁜 공간에서 열렸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갈색 나무 바닥에 이케아식 조명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북유럽식 인테리어였는데, 형형색색 풍선들이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둥둥 떠다녀 왠지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한쪽에는 널쩍이 고퀄리티의 핑거푸드가 마련되어 있었다. 바삭바삭 해 보이는 크로와상, 달콤한 초코 머핀과 영양까지 가득할 것 같은 에그 타르트, 싱싱한 포도, 사과, 오렌지 등이 함께 담겨 있는 손바닥 만한 후르츠 컵. 그리고 뉴요커들이 즐겨 듣는 음악은 아주 적절한 볼륨으로 흘렀고 역시나 맥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같은 음악이라도 애플 로고가 찍힌 디바이스에서 흘러나와야 진짜 음악이다.


네트워킹 파티이긴 하지만 오늘도 네다섯 스타트업의 CEO들이 나왔다. 그들은 어김없이 유행스럽게 O2O, 에듀테크, VR 등 분야별로 골고루 구성되었으며 각자 5분씩 본인 회사의 서비스를 소개한다. 대부분 본인이 진입하려는 시장은 새롭게 열리고 있으며 본인의 서비스가 그 시장에 얼마나 잘 매칭 되는지 강조하면서(MPF; Market Product Fit),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언제 그 성장을 멈출 것인지는 자기 자신도 예측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발표가 모두 끝날 무렵 나는 아까부터 자꾸만 눈길이 가던 핑거푸드를 한 손으로 잽싸게 집어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명함을 두둑이 부여잡았다.


아까 발표했던 VR 서비스를 한다는 CEO가 있다. 현재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진행 중에 있으며 직원들 중 70% 이상이 엔지니어인데, 3D 렌더링, 동작인식, 센싱 입력, 이미지 프로세싱 등 듣기만 해도 엄청나게 어려워 보이는 기술들을 개발하기 위해 유학파들과 국내 상위권 대학의 멤버들을 영입했다고 한다. 그 기술들은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의 기술보다 뛰어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여러 엑셀러레이터들로부터 많은 문의를 받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국내 유망 스타트업에 선정되었다고 기뻐하였다.


미래가 보장된듯한 이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20대 후반의 여성분이 적극적으로 다가선다. 그녀 역시 유학파로서 유창한 영어 구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본인의 디지털 마케팅 경력을 활용하여 통합적인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을 펼치고 싶다고 그 자리에서 구직을 의사를 밝힌다. 물론 즉흥적인 게 아니라 오랫동안 눈여겨 왔다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는 좀 불편했다. CEO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대단히 어려운 기술 개발을 위해 최고의 인재를 전 세계에서 영입. 여러 엑셀러레이터 들의 러브콜. 정부로부터 권위 있는 상 수상. 인적, 기술적인 비교 우위를 통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 예정... 그래서? So what?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이상하게 그는 나에게 제품을 팔지 않는다. 권유하지도 않고 질문도 하지 않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기술력이 뛰어나고 훌륭한 제품인데 왜 이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적극적이지 않는 걸까? 심지어는 본인이 CEO이면서 가격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 같지가 않다. 지금까지 몇 개나 팔렸냐고 물으니, 미국의 대형 유통망과 계약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아직 한 개도 못 팔았다는 얘기다. 


많은 CEO들이 제품 소개에만 열을 올린다. 상대방(고객)을 향해 질문하려 하지 않는다. VR 제품 한 번 경험해 보지 않으실래요? 한 번 사용해 보세요. 재밌어요. 이거 필요하지 않으세요? 이건 어떠세요? 써 보시니 어떻습니까? 괜찮으세요? 화면이 너무 작다고요? 머리가 많이 어지럽다고요? 이건 16만 9천 원이고 이건 23만 5천 원인데 둘을 비교하면 어떠신가요? 비싸다고 생각하세요? 사실 의향이 있으세요? 뭘 개선하면 더 좋으시겠어요? 


제품 소개는 세일즈가 아니다. 모든 것을 제품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고객의 의견을 듣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고객의 의견을 제대로 들으면 제품을 다시 바꿔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고생하며 만든 제품을 겨우 고객의 의견 때문에 바꿀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다. 하다 못해 노점에서 군밤 파는 아저씨도 길 지나는 사람들에게 한 번 먹어보라며 적극적으로 '세일즈' 한다. 한번 써보라고 샘플을 뿌리는 것과 같다. 샘플에 만족한다면 고객은 한 봉지 사 먹을 것이다. / 스타트업세일즈연구소 유장준

매거진의 이전글 아, 저는 세일즈가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