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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01. 2022

선생님으로 살아가던 시절

- 감사한 시간들

너무 입고 싶었던 옷


난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중학교 땐 그래도 10등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등수가 훅 밀렸다. 모든 과목 중 음악 빼고 모두 '양'과 '가'를 맞을 만큼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수학은 정말 잼뱅이였는데  시험에서 운 좋으면 모두 한 번호로  찍어서 12점을 맞고 운 나쁘면  6점을 맞곤 했다. 그게 뭐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너무 어려운 건 피해 가는 것이 맞고 수학은 진심 너무 어려웠기에 그다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고3 때 본 첫 수능 때는 수학을 운 좋게도 30점을 맞았다. 안타깝게도 모든 과목 탈탈 털어도 전문대 갈 점수밖에 안 나왔지만. 전문대에 입학했지만 왠지 내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객기로 다시 도전한 수능에서도 수학은 손을 대지 않았다. 다른 과목으로 만회해보리라 다짐하고 열심히 했지만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물을 먹고 피치 못할 삼수를 해야 했다. 이젠 더 이상 수학을 모른 채 할 수없어서 처음으로 중1 수학부터 다시 공부를 했다.

오. 그제야 무슨 말인지 좀 알 것 같았다.

공부를 처음부터 잘했던 사람이 아니기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 늘 신기했다. 그랬기에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뒤 내가 무슨 진정 인생의 승리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학원 아르바이트도 많이 하고 보습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었지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폼나는지 몰랐다. 요즘은 어딜 가도 선생님들이 넘친다. 마트에 가도, 부동산에 가도, 미용실에 가도 다들 선생님이다. 그러나 나는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진정으로 '선생님'인 것이다!


나에게 맞는 옷을 드디어 찾은 기분이었다. 아니 너무 입고 싶었던 옷을 드디어 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힘에 부쳐가며 소방호스를 끌지 않아도 되었고 가만있어도 너무 예쁜 대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시계 봐가며 모둠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나이에 어울리는, 내 아이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직업을 갖게 된 것이 정말 너무나 좋았다.


학교에서의 나는 언제나 밝고 명랑했다. 아이들에게도 엄했지만 재밌는 선생님이었고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엔 내가 더 설레었다. 교사로서 아이들과 소풍 가는 게 신이 났다. 소풍이라니! 애들처럼 흥분하며 버스에 올랐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는 멀미에 죽다 살아났지만.



마음이 건강해졌나보구나


가장 죽이 잘 맞았던 6학년 그 아이들과는 두바퀴를 돈 띠동갑이었다. 그리고 그 반에는 재준이도 있었다.

딱봐도 고도비만에 위협적인 덩치. 그러나 축 처진 눈과 서글서글 웃는 얼굴은 오히려 너무 만만해보인다.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재준이는 아버지와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우리반이 되었다.

사춘기가 온 6학년들은 멋부리는 만큼 냄새도 심하다. 재준이는 유독 온몸이 땀냄새가 심했고 그런 재준이를 친구들은 좋아할 리가 없다. 눈치빠른 재준이는 또 그걸 모를 리 없다. 아빠에게 학교 가겠다고 말하고는 툭하면 학교를 오지 않는다.

 재준이 학교 오는 날이면 온몸은 멍투성이다. 속이 상한 아빠가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타작을 한 모양이다. 그런 재준이와 나는 약속을 한다.

"내일부터 8시 20분까지 요 앞 다리에서 만나. 안나오면 알지. "

"....네"

그뒤로 재준이와 함께 등교한다.

나는 그렇게 3살 막내를 어린이집에, 7살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선 재준이를 만나서 학교에 출근한다.

 

그런데 이녀석이 어느날 또 안온다.

아빠가 아무리 전화해도 안받고 내가 전화해도 안받는다. 문자를 보냈다.

'너 어디야.'

'00역이요.'

'지금 데리러갈게'

'네'

그날 그녀석이 학교를 안오고 00역으로 간 이유는 반티를 함께 입고 합창연습을 해야하는데 뚱뚱한 몸이 드러나는게 싫어서이다. 가장 큰 사이즈의 옷도 작았나 보다.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으며 몸을 드러내지 않던 아이다.

남편 티셔츠 중에 반티와 같은 색깔 티셔츠 하나를 가지고 00역으로 간다. 재준이에게 건내며

"죽고싶냐? 당장 입고나와"

"....네"

그렇게 손이 많이가던 녀석은 어느순간부터는

 결석하지 않았다. 내 말이라면 뭐든 다 들었다.


그 일이 있고 5년이 흐른 얼마 전  재준이에게 카톡이왔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나요? 너무 연락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이제 연락드려요. 선생님이 저 아침에 태워다 주신거, 00역으로 찾으러 와 주신거, 저 불러서 간식 주신거 저 하나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얼씨구. 살은 좀 뺐냐? 아직도 여름에도 긴팔 입어?'

'아니요, 이젠 반팔 입어요. 살은 그대로에요.'

'마음이 건강해졌나보구나'

'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그시절, 속썩이는 재준이를 예뻐하진 않았다. '여자 어른이 필요하면 그건 선생님이 해줄게'라고 말하면서도 여자어른이 필요한 일이 이 아이에게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그런데, 재준이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갑자기 미안해진다. 그리고 너무 고마운 그 아이의 들에 눈물이 흐른다.


 '군대 가기전에 꼭 보자. 정말 그땐 꼭 만나.'

'네. 선생님!'

짜식. 너 한명 이면 돼. 내가 교사로서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너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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