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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2. 2022

차가워진 교실

우린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당연히 나는 제일 잘난 교사일 리가 없다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의욕이 너무 앞섰던 나는 학급운영도, 학생지도도, 교과지도도 내 힘을 '너무 많이' 쏟았다. 아이들의 관계에 지나치게 관여했고 혹여 싸움이라도 난 경우는 세상 최고 잘못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호되게 혼을 냈다. 성취도가 부족한 아이들의 부모님에게는 주기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교과지도 협조를 부탁했으며 숙제를 안 해온 학생은 그날 숙제를 다 하기 전까진 집에 보내지 않았다.

내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마"였다. 내가 좋아서 열심히 하는데 왜 저렇게 얘기하지. 질투하나. 오히려 나는 일부 교사들의 안일한 근무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면 그렇지 않은 그대들의 명성에 조금 누가 될 것 같기 해요. 그러나 교사라면 이 정도 열정은 있어야지. 그렇게 김 빠진 사람처럼 앉아있으면 쓰나. 이봐요. 우리 밥값은 하고 삽시다.'세상 내가 제일 좋은 교사였고 내가 제일 잘난 것 같았다.


그러나 당연히 나는 제일 잘난 교사일 리가 없다. 초보 교사였기에 노련하고 안정적으로 반을 이끌지 못했고 또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잘하려고 애를 썼다. 당연히 힘이 들어간 일에는 마찰이 생기고 독단적인 행동에는 대가가 따랐다. 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에게 과도한 요구, 숙제, 엄격한 규율을 제시하기도 하고 그래서 학부모에게 원성을 사는 일이 생기고 꼼꼼하지 못한 탓에 학교일에 실수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랬음에도 나를 좋아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많았고 나 스스로 열심히 하는 내가 자랑스러웠기에 교사로 사는 시간은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 힘이 '지나치게'들어간 시간들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교실은


그렇게 지내던 나는 언제부턴가 이 일이 전처럼 즐겁지 않아 진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막내에게 핑크퐁 하나를 틀어주며 밥을 먹인다. 한입 먹고 머리 빗고 또 한입에 양말 한 짝, 막내도 나도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아침을 먹고 어린이집에 일등으로 도착한다.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도착하고 정해진 시간에 급식을 먹고 정해진 시간까지는 할 일이 없어도 퇴근할 수 없다. 물론 조퇴를 쓸 수 있지만 '동학년에 피해가 가니 조퇴를 자제하라'던 초임 때 부장이 했던 말이 떠올라 쉽게 조퇴를 할 수 없다. 모든 수업시간과 근무시간을 정확하게 교육정보시스템에 기록하고 1년간의 모든 행사와 수업 계획은 연초에 작성한 대로 오차 없이 흘러간다.

규칙적이고 계획된 삶이 편안한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안정적이고 정적인 이 생활이 좋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예외 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의미 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나사를 조이던 찰리 채플린이 나온 영화처럼, 공장에서 일하는 것과 학교에서 일하는 것의 차이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옆반 선생님이 이렇게 몇십 년을 살아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한 번은 교실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운동장을 나와 몇 바퀴를 돌았다. 숨이 막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도대체 나라는 애는 왜 이러는 걸까, 내가 나를 견디기가 어려워 심리 상담센터에까지 가서 조언을 구하지만 나만큼 내 인생에 관심 없는 상담가들은 미지근한 조언들로 나를 어를 뿐이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조퇴하는 것에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 교실에 요가매트를 들고 가서 아이들이 하교하면 누워있는다. 하루도 퇴근시간까지 남아있지 않고 무조건 학교를 빨리 빠져나온다. 


그토록 원하던, 그 모진 시간을 감내하며 꿈꾸던 선생님이 되었다는 감동과 환희로 3년 동안 내가 쏟을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내 안의 모든 열정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매주 새롭게 아이들의 작품으로 꾸며놓던 환경판과 곳곳에 내 정성이 가득 묻어나던 교실에 흥미를 잃었다. 매 수업시간 아이디어를 짜고 좀 더 잘 가르쳐주기 위해 애쓰던 내 모습도,  '6년 동안의 모든 담임선생님 중에 체육 제일 많이 해주시던 선생님'에서 '한 학기에 한번 운동장에 나가는 일이 너무 귀찮아진 선생님'이 되어 버렸다. 안정적인 내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한 시간들이었고 내가 사랑했던 교실은 숨통을 조여 오는 감옥 같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지가 않다.

나는 아직 너무 뜨거웠다


왜 이럴까.


교직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응, 다 그래. 딱 그럴 때야. 힘 빠지고 재미없고. 근데 그 시간 지나면 또 괜찮아져.'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의 의미가 뭘까. 다시 수업하는 게 재밌어지는 걸까, 아니면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걸까. 다시 꿈꾸듯 생기 넘치는 교실을 만들 수 있다는 걸까. 나에게 괜찮아진다는 말은 이 무료함과 무기력함, 열심히 할 필요 없는 시간 때우기와 가면 뒤에 숨어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익숙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떤 일이든 힘들고 돈 벌어먹고 살려면 싫은 것도 해야지. 그래도 이 일은 방학도 있고 정년도 보장되고 솔직히 사회적으로도 그럴 듯 한 걸.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며 견디는 게 맞아? 아침에 애들이 학교에 오면 한숨부터 나오고 왁자지껄한 쉬는 시간은 짜증이 밀려오고 일요일 저녁만 되면 다음날 학교 갈 생각에 눈물부터 나버리는데..  이게 익숙해지게 기다리려야 한다고?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직업보다 나에게 매력 있던 이 일을 단숨에 뒤돌아서는 건 나도 할 수 없었다. 애가 셋인데 이렇게 그만하는 게 옳은 건가, 남편 말마따나 너무 무책임한 건 아닌가 나 역시 질리도록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사는 게 오히려 내 인생에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했던 건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이지,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하는 일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도덕적인 합의안까지 이르렀지만 힘들게 얻은 소중한 직장이기에 더 이겨내려고 애썼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나아지길 바랬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그냥 직장인으로서의 삶. 그것이 전부인 시간들이 몇 년 더 흘렀다. 나는 더 이상 이 시간들을 '견디며' 살아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 계속 학교에 남는 건 현실과 타협한 내가 아이들이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날 기회를 빼앗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이 내가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싫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정이 쉬워졌다. 


굳이 교직이 나랑 맞지 않는 이유들을 찾아 주변인들을 설득시키려 하지 않았다. 돌아올 대답은 너무나 뻔했다. 그냥 '내가 그래. 싫네.'라고 말했고 나를 잘 아는 주변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깔끔했다. 

하하. 그래, 너답다.


 정년을 목표로 시간을 죽이고 앉아있기엔 나는 아직 너무 뜨거웠다.  

나는 한번 더 신나는 일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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