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능력으로 즐겁고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내가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일.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하는 일. 나는 겁도 없이 장사가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꽃..이라면?
네가 해 보고 싶다던 그거 말이야. 장사. 사업.
그 정도 손재주라면 해 볼만 하지 않아?라고 머리가 반짝인다.
뜨개질, 포장, 만두 빚기, 과일 깎기 하물며 어린 시절 엄마의 부업으로 해본 볼펜조립까지. 손으로, 빨리, 예쁘게 하는 건 좀 잘해 왔었던 것 같다.
그런데.. 꽃?
내 발로 한 번도 꽃 사러 꽃집에 들어가 본 적도, 화분을 집에 들여놓은 적도 없는데 왜 꽃이었을까.
왜 할 수 있을 것 같았을까.
꽃이 좋아서, 평소에 꽃과 좀 친했어서, 식물 키우기에 일가견이 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꽃 포장에 자신이 있어서. 그건 배우면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는 장사가 너무 해 보고 싶으니까'가 꽃을 시작한 이유였다.
신나는 건 이런 거구나. 이렇게 재밌는 세상이 있었구나. 꽃에 미쳐서 멈출 수 없었다. 매일 10 시간 넘게 유튜브로 꽃 포장법을 보고 수백 개의 꽃 이름들을 외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꽃. 유튜버들의 친절한 설명은 나도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점점 크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실전 연습이 필요했다. 무작정 양재 꽃시장을 갔다. 무심을 넘어 가격을 묻는 것도 눈치보 게하는 도매상인들의 아우라에 겁이 난다. 그러나 나 역시 이분위기가 익숙한 척 툭툭. 얘는 얼마예요? 아이고, 비싸네~ 를 이집저집 투척하며 속으론 덜덜 떨면서도 '호구는 안된 거지??' 하며 만족한다. 한아름 꽃을 사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차에 타서는 첫마디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에, 나 혼자 꽃시장을 와서 꽃을 사는 것을 해내다니! 7살 딸 처음으로 마트에서 우유 사 갖고 돌아왔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찌나 나 스스로가 대견했던지. 또 하나의 임무를 완수한 장수가 된 것 같았다. 무작정 사온 꽃들로 온 집안은 난장판, 천둥벌거숭이 고양이들과 내 서툰 손탓에 물통은 매번 엎어져 방바닥은 엉망진창, 꽃 다듬고 남은 쓰레기들로 방 하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래도 신기했다. 성지 탐방을 하는 양 꽃 하나하나 너무 소중했다. 그렇게 몇 번 양재,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을 다니면서 이제 겁은 나지 않는다. 그 뒤로 일주일에 세네 번도 꽃시장을 다니면서도 그 도매상인들은 여전히 쌀쌀맞았지만 나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맞받아친다. "어머 사장님, 한 단 만 산다니까 왜 두 단 팔라그래, 오늘내일 팔고 말 거라는데!"
내 손재주는 꽃판에서도
혼자 연습한다고 절대 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찾고 찾아 마음에 드는 꽃집에서 창업반 수업을 들었다. 꽃을 너무 사랑하는 내 꽃 선생님은 내게 진정 꽃나라를 소개해줬고 20회 수업에 10회만 진행했을 시점에 나는 차려버렸다. 꽃집을.
우리 동네에서 가장 싼 월세를 부르는 상가를 찾았다. 이미 죽은 골목에, 북향에, 어찌나 기름 쩐내가 나던지. 괜찮았다. 매달 마이너스만 아니길, 그럼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니까.
점점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다행히도 내 손재주는 꽃판에서도 조금은 통했던 것 같다. 가끔은 나보다 식물과 꽃을 훨씬 많이 아는 분들이 와서 잔뜩 움츠려 들기도 했지만 애당초 꽃다발을 예쁘게 만드는 것에 자신이 있던 나는 그것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괜찮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던 나는 점점 더 욕심이 난다. 이 자리가 아니라 더 좋은 곳에서 해봐도 되지 않을까. 나는 더 큰 판에서 제대로 다시 해보기로 한다.
내 두 번째 꽃집은 기존 월세에서 두배가 넘는, 자동차와 사람이 쉴 새 없이 다니는, 핫하디 핫한 사거리 코너 자리였다. 기존 꽃집 자리에서 불과 300미터. 기존 손님을 놓치지 않으며 신규 유입이 얼마든지 가능한 곳. 내 이곳에서 진짜가 뭔지 보여주리라.
12월 중순에 오픈한 내 꽃집은 시즌을 맞이하고 졸업을 맞았다. 하루 종일 아예 밥을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하고 일을 하고 저녁 8시가 되었는데 남은 예약 건을 세어보니 40개였다. 이미 등이 찢어질 듯했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일하러 간 남편 대신 칠순 노모에게 와서 애들 밥 좀 챙겨달라고 부탁을 하고 밤을 새워서 꽃다발을 만들었다. 이런 게 장사구나. 1년 장사 다한다는 어버이날도 아직 아닌데. 코로나라 시국도 심란한데.. 이거 이렇게 바빠도 되는 거야? 꽃이 날개 달리듯 팔렸다. 일주일에 일곱 번 꽃을 사고 매번 다 팔고도 없어서 못 팔았다.
막내 어린이집 졸업날 친구들에게 선물한 거베라
예쁜 마음이 전염되는 순간
꽃을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길면 일주일 보는 꽃임에도 받을 그사람이 기뻐할 찰나를 떠올리며 꽃을 선물한다. 꽃을 주문하고 시간에 맞춰 꽃집에 온 사람들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주문한 꽃을 찾는다. 그리고 꽃을 받을 그사람과 어울리는 꽃을 발견하고는 정말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어떤 이들은 돈을 내고 샀음에도 내가 마치 자신들에게 꽃을 선물한 것같이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선다. 꽃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 나도 그 예쁜 마음이 전염되던 순간들로 이 일을 즐겼다.
내가 파는 게 '꽃'이라는게 행복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이 환하게 웃으며 내가 포장한 예쁜 꽃을 들고 나가는게 좋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 일도 이익을 남겨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곳과 차별성이 있어야하고 가격부터 포장법, 쓰는 꽃의 종류와 사진의 각도까지 세세하게 경쟁해야하는 부분이 많았다. sns에 거부감이 있는 나는 나를 포장해서 홍보하고 쟁취해야하는, 장사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힘들었다.
또한 부진한 체력과 아직 어린 나만 바라보는 식솔들, 가끔 있던 무례한 손님들로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만두어야 할 이유들
난 분명 미쳐있었다. 꽃 아닌 것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옷 한 벌도 사지 않고 아이들에게 찌개에 밥을 한번 해준 적도 없었다. 매일 녹초가 되어 들어와서 밀 키트로 밥을 해먹이고 인스타에 꽃 사진을 올리고 그날 번 돈을 계산하고 내일 예약 건들에 쓸 꽃을 새벽에 사러 나갔다. 어른 여자가 된 이후에 가장 적은 몸무게를 연신 갱신했다. 꽃집 아가씨들은 그렇게 예쁘던데 난 거울 한번 볼 시간이 없었다. 나 때문에 덩달아 꽃시장에 다니는 남편은 투잡에, 애들 보고 살림까지 도맡았으니 쓰리잡, 포잡까지 담당하고 있었고 이제 1학년이 된 막내는 엄마손 잡고 등교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물밀듯이 꽃 주문과 클래스 문의가 들어왔다.
오직 돈이었다. 꽃집은 내 꿈 꾸던 아름다운 노후와는 상관이 없었고 의미 있고 신나고 가슴 뛰는 일을 하고자 했던 의지와도 멀어지고 있었다. 오직 매출, 오직 돈이 이 꽃집을 이어가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또 손님이 없는 날에는 마음이 너무나 불안했다. 손님 다 뺏긴 거 아니야? 이제 내 꽃이 안 예쁜가. 그때 그 꽃이 상태가 안 좋았는데 그거 사간 손님이 어디 맘 카페에 올렸나. 불안증은 정도가 심해지고 나는 가게에 앉아 있어도 불안, 집에 와서도 불안해서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못했다.
나는 장사가 잘돼서, 장사가 되지 않아서 정상적으로 살고 있지 않았다.
이게 뭐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재밌게 살고자 했었는데. 내 꼴도 엉망 집도 엉망 우리 애들도 잘 살고 있는지 생사 확인 수준이 된 지 오래. 나는 또 그만두어야 할 이유들 앞서 섰다.
마침 창업반 클래스를 수강중인 한 학생이 내 꽃집을 인수하길 원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넘기기로 한다.
나는 이번엔 좀 심각해졌다.
나는, 왜 이럴까. 매번 왜 이렇게 마음이 불이 났다 다시 얼음이 되고 좋아하는 것도 편안하게 즐길 수 없는 걸까. 분명 문제가 있다. 찾아야 한다. 내가 이러는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