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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17. 2020

그녀가 걸었던 길

#16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不可思議) 한 일..?!!



   서기 2020년 8월 10일 돌로미티 여행 사흘째 되는 날, 하니와 함께 걷게 된 곳은 빠쏘 가르데나 고갯길 정상 근처의 트래킹 길이다. 본격적인 트래킹을 앞두고 답사 겸 방문한 이 길 위에 서면 눈이 절로 시원해진다. 광각렌즈를 사용해야 촬영이 가능할 것 같은 거대한 바위산들은 각각의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중 백미는 고갯길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가르데나 고갯길의 용틀임 모습일 것이다. 꼬불꼬불 구불구불 길게 이어지는 길은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는 즉시 다시금 눈에 선한 빼어난 풍광이다. 우리가 지나온 흔적이 그곳에 남아 다시금 손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산길에 들어서면 꿈같은 길이 우리 앞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속에 하니와 내가 천천히 발품을 팔고 있는 것이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저만치 앞에서 가르데나 고갯길을 가리키는 노 부부가 눈에 띈다. 이들도 우리의 형편과 별로 다르지 않은 듯 고갯길 마루에서 잠시 걷다가 되돌아 갔다. 



그녀가 걸었던 길



저만치 앞서 걷던 하니가 가르데나 고갯길을 내려다 보고 있다.


참 희한한 일이지..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일은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일이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일 망정 너무 다른 생김새와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부부란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일러 무촌 관계라며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무촌이라서 아무 때나 돌아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촌수처럼 말하기도 한다. 


앞서 걷던 하니가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귀여워..ㅋ) 그녀의 손에는 파라솔이 들려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 갈수록 지지고 볶고 살던 날들에 미운 정이 박히고 고운 정이 함께 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변하게 된다. 그게 반드시 발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 스스로 쌓아온 이력들 때문에 어디를 가나 당신을 생각하게 되고, 무엇을 해도 당신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가르데나 고갯길 위에서 내려다 본 돌로미티 알타 바디아(Alta Badia)의 빠쏘 가르데나(Passo Gardena)의 꿈같은 풍경.. 돌아갈 때는 이 길을 이용했다.


이런 사정은 우리에게도 별로 다르지 않은 일이다. 하니는 산행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산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산행을 통해 체력을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 산행을 하면 세상에서 얻게 된 불필요한 스트레스 전부를 날려버리곤 한단다. 산은 당신을 가슴에 꼭 보듬어 주는 또 다른 애인과 다름없는 것. 다른 점이 있다면 스스로 발품을 팔아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 



우리가 가르데나 고갯길 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는 것도 이유가 있다. 하니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나는 사진을 애인처럼 여기는 습관이 늘 함께 따라다녔다. 나의 삶 혹은 우리의 삶을 기록해 두는 것이다. 이런 습관들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외장하드를 열면 나뿐만 아니라 하니가 저만치 앞서가는 장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저만치 앞서 걷고 있는 하니의 뒷모습..


돌로미티 여행기에서 등장하는 하니의 모습 등 나의 브런치에 등장하는 하니는 주로 뒷모습이다. 어쩌다 인증숏을 날릴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뒷모습이 대세이다. 뒷모습을 찍은 스틸컷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진의 뒷모습은 얼핏 타인을 연상케 하지만 뒷모습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 보는 것이다. 


뒷모습에 감추어진 우리네 삶.. 뒷모습이 아름답다.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사랑할 때는 전혀 모르고 살지만 타인의 삶을 참조하면 우리는 언제인가 먼 길을 나서야 하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사이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육신은 땅에 머무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지탱하고 있던 영혼이라는 에너지는 하루 삼천리씩 멀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니는 가끔씩 어른들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천리씩 멀어지는 우리의 형편을 말하곤 했다. 삼천리는 1,2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 지지고 볶고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향해 멀어지는 것이다. 



그게 별리란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란다.  



가르데나 고갯길 혹은 산행에서 남긴 기록들을 보면 하니가 주로 앞서 걷는다. 이유가 있다. 한 컷의 사진을 찍는 동안 잠시 머문 시간에 하니의 발품은 이어지는 것. 어떤 때는 꽤 먼 거리를 유지하고 산길을 걸을 때도 있었다. 그땐 피사체들이 나를 붙들고 놔주지 않는 것이다. 



돌로미티 여행을 할 때는 이 같은 일이 잦았다. 카메라의 배터리 눈금이 깜빡거리다가 사라질 때까지 셔터를 누른 적도 있다. 천하절경이라는 말이 마침맞은 곳에서 하니와 함께 발품을 팔고 있는데 어떤 때는 저만치 멀어진 하니 때문에 알지 못할 묘한 기분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이 이처럼 마냥 꽃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함께 걷는 길'은 매우 제한적인 것.


저만치 앞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하니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간밤에 잠자리에 누워있는 동안 여전히 머릿속을 떠도는 풍경이 돌로미티에서 우리가 지낸 시간들이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언제인가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면 나의 영혼은 우리가 함께 거닐었던 산길에 머무는 게 아닐까.. 우리가 목숨 걸고 다녔던 먼 나라의 여행길이 아닐까.. 동고동락의 길에서 잠시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에게 주어진 서로 다른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17 Septt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K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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