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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21. 2020

색안경과 조물주의 꿈

#4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브런치를 열면 맨 먼저 보이는 표지 사진 아래 황량해 보이는 산과 비췻빛 강물과 낯선 숲이 보인다. 덜컹 거리는 버스 창에서 바라본 풍경인데 초점이 흐리다. 대강의 윤곽은 보이지만 피사체가 뚜렷하지 못하므로, 크기가 작은 풀꽃들이나 나뭇잎 그리고 황량해 보이는 벌판의 본래 모습이 확실하지 않다. 


조금만 설명을 곁들이면 이곳은 오래전 지각활동으로 용암이 들끓다가 식었던 것으로, 지구별 상부 맨틀의 대륙지각의 한 부분이자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진 산의 모습이다. 그 위에 타다 남은 재가 흙으로 덮이고 다시 그 위에 나무가 자라나 오늘날의 풍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세상에 널린 일반적인 풍경이 아니라, 지구별(행성)의 매우 제한적인 곳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매우 원초적인 풍경들.. 



먼지 낀 버스 창에서 바라본 풍경이지만, 그나마 초점을 잘 살린 풍경사진에 드러나 보이는 파타고니아의 풍경들은 여행자에게 요구한다. 이 땅에 발을 디디면 "당신과 나는 태초의 동산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한다. 태초의 동산.. 누가 그곳을 알리오만 잠시 언급한 내용처럼 과학자들은 지구별의 생태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지구별의 구성은 물론 우주와 천체의 생성원리 등에 대해 소상하게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는 물론 은하수에 펼쳐진 까마득한 시간 속의 별들에 대해서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시간과 거리의 단위를 계산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천체물리학자이거나 수학자 물리학자 등의 이름으로 우리와 같은 별에 살고 있다. 



또 지구별로부터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긴 거시적 사람들 외에도 지구별 내부로 혹은 인체 내부로 시선을 돌린 미시적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요즘 우리 인간들을 못살게 굴고 있는 비루스는 물론 인체에 유익한 박테리아 등 미립자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그리하여 관찰 이상의 집착에 성공하여 마침내 인류가 세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들 모두의 업적은 위대하고 또 너무 훌륭한 나머지 조물주 조차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그리하여 인간이 글을 깨우치고 문명사회로 발돋움한 이후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자화자찬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세상이 과학문명의 발전에 힘입어 오늘날에 이르렀으면, 오늘을 사는 현대인은 과연 행복할까..라는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인간의 오감(五感)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5가지 감각을 통틀어 말하며, 감각을 수용하는 수용기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이 감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각(視覺)은 눈을 통해 인지하는 감각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테면 눈을 통해 사물의 크기와 모양, 빛깔, 멀고 가까운 정도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시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 아래 나무 위키 자료를 통해서 본 시력은 보다 구체적이다. 



시력의 기준

흔히 시력 검사표에는 2.0이 최대로 되어 있지만 엄연히 시력은 2.0이 최대가 아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최대 시력은 2.5이다.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710N039 넓은 의미의 시력은 대비감도(Contrast)[2], 심시력(深視力)[3]동체시력[4], 순간 시력[5], 주변 시력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항목에서는 주로 좁은 의미에서의 시력을 다룬다.

시력의 기준은 화각(Angle of view)이 1'[6]인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을 정상시력 1.0 [7]으로 보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ISO 8596으로 규정된 방식을 따른다. 이 방식은 외경 7.5 mm, 굵기 1.5 mm의 고리에 굵기와 같은 길이의 끊어진 틈을 만들어 C자 모양으로 [8] 만든 다음, 이것을 5 m [9] 떨어진 거리에서 보게끔 하여 끊어진 틈을 알아볼 수 있으면 시력 1.0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만약 검사받는 사람이 시력 1.0을 판정하는 데 쓰이는 란돌트 링의 10배 크기로 그려진 란돌트 링밖에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것은 시력 0.1(시력 1.0의 1/10)이다.


위 자료에서 눈여겨볼 것은 시력검사표에 익숙한 시력의 정도이다. 나의 경우 한 때는 시력 조견표를 보면 깨알보다 더 작아 보이는 글씨가 훤히 보였다. 커닝을 하지 않았는데도 표에 나타난 글씨 전부가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청춘을 지나 안청춘(?)에 들어서고부터는 원시로 변하면서 안경을 착용하게 됐다. 주로 컴 앞에서만 돋보기를 사용한다. 



그리고 다른 오감도 동시에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하다. 인간의 가청주파수 대역은 20Hz(헤르츠)에서 23,000Hz 사이에 고정돼 있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라디오의 주파수 대역이 주로 이러하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동물들의 가청수 주파수 대역은 실로 놀랍다. 


고양이의 가청주파수 대역은 45Hz에서 64,000Hz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고양이는 100m 밖에서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단 몇 센티미터의 오차로 정확히 파악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녀석의 레이더(?)에 포착된 어떤 생물체는 곧 먹잇감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맹바기든 쥐새끼든.. 참 놀라운 일이다. 



이런 비교는 비교라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후각(嗅覺)은 어떨까.. 오감 중에 후각이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감각 기관으로, 정확히 공기 중의 화학 물질들을 감지하는 것을 말한다. 후각 능력은 시력처럼 1.0 혹은 2.0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건 초딩들도 다 알 것이다. 


후각은 미각과 함께 이탈리아 요리 혹은 소믈리에(Sommelier) 세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후각 때문에 미각이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리학교에서 직접 코를 틀어 막고 시연해 본 결과 식별해 본 식재료는 분간이 잘 안되거나 엉뚱한 결과를 낫기도 했다. 미각 분야는 나중에 따로 알아보기로 하고 후각을 좀 더 구체화하면 이러하다. 



널리 알려진 개의 후각은 고양이의 청각보다 놀랍다. 개의 후각은 견종과 크기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 하지만 대체로 개의 후각 능력은 인간의 1만 배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 때문에 이탈리아 요리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버섯 따르뚜포(tartufo)는 땅속에서 자라는데 그걸 녀석들이 찾아내는 것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금을 케는 것과 다름없다. 또 주인과 생이별한 진돗개가 먼 곳에 있는 주인을 찾아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포스트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색안경(色眼镜)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나는 언제인가부터 색안경 즉,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청춘 때는 잘난 멋으로 안청춘 때는 눈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특히 여름철 해변이나 눈 덮인 산 등에서 눈을 보호해야 할 때는 습관적으로 색안경을 낀다. 그때 눈이 편안해 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습관은 이탈리아인들 혹은 유럽인들에게는 일상이나 다름없다. 내가 만난 이탈리아의 어떤 유모차급 아이 조차 선글라스(occhiali da sole)를 끼게 한다. 참 귀여운 녀석들.. 


그러나 우리가 강렬한 빛으로부터 보호하는 '색안경'이란 말은 다르게도 쓰인다. 우리나라 말의 관용표현으로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말이 그러하다. 이런 표현들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어떤 상황을 볼 때 '좋지 않은 감정이나 편견을 가지고 대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오감을 길게 끼적거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에서 느닷없이 무슨 색안경..? 단 몇 줄로 요약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남아돌고(?) 능력의 한계가 작용하여 길게 끼적거렸다. 조물주가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능력 또는 오감을 벗어나는 순간으로부터 잠시 호기심은 충족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때부터 불행이 시작되고 불만족이 뒤를 쫓고 희망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랄까.. 



인간이 문명사회의 정점에 서면 당신들이 스스로 만든 올무에 빠져들며 그게 행복이자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비근한 예로 천체 물리학자들은 태양계를 연구한 끝에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 태양계에 하나뿐인 별(태양)을 말하면서 스스로 놀라고 있는 것이다. 태양은 지구로부터 1억 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고, 지구는 그 거리를 유지하며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번씩 공전을 한다는 것. 그렇다면 1억 5천만 킬로미터는 얼마만큼의 거리인가.. 



만약 지구에서 태양까지 걸어서 간다면 4,300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올림픽 메달을 딴 최고의 마라토너가 1초도 쉬지 않고 100미터를 17초의 속도로 달린다면, 822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170년 후에.. 그리고 서울시 모범택시를 타고 가면 2천억 원의 택시비가 필요하며.. 기차를 타고 간다면 115년. 시속 900킬로미터의 비행기를 타고 가면 19년이 걸린다. 그렇지만 빛의 속도로 간다면 달라진다. 고작 8분 19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지금 태양의 모습은 8분 19초 전의 모습이라는 것. 태양이 빛의 속도로 8분 19초 동안 여행한 끝에 지구 행성에 도착한 것이다. (흠.. 이게 재밌나.. 재밌냐고..?) 



100년도 채 못 사는 인생이 대략 20년 이상을 공부한 결과 누리고 있는 행복이 이러한 게 아닌가.. 대한민국 소식과 브런치 때문에 자주 열어보고 있는 유튜브의 국내 시사뉴스 속에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로 전락한 안떨수가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라임 사건과 윤뚱렬의 가족 사건 등에 대해 국민의 짐과 함께 국민들을 눈속임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적폐 세력의 한 떡검을 특검 팀장으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고양이 앞에 어물전을 맡기자는 유치함 이하의 발상. 윤뚱렬이나 안떨수 등.. 이런 아이들이 공부를 적게 했나. 돈이 없나.. 생긴 건 멀쩡한데 속은 더 썩을 곳이 없는 것. (흠.. 이런 아이들이 재밌나.. 재밌냐고..?) 



세상이 좋아져서 다행이지..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 때 같았으면 하루아침에 목이 잘릴 짓을 백주에 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과 함께 놀아나고 있는 좀비들이자 조물주를 팔고 나선 가짜 순교자들.. 이들이 바라본 세상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색안경을 끼고 본 세상의 모습이자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말종들이 아닐까.. 거기에 비할 것도 없지만 우리네 민중들이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 여행지에서, 당신이 배운 알량한 지식으로 조물주가 만든 세상을 저울질하면 조물주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조물주가 우리에게 부여한 오감은 인간의 실정에 가장 적합한 것이자, 세상을 먼저 만들어 놓고 나중에 만든 이유가 있다. 시력 2.0, 가청주파수 23,000Hz.. 후각 미각 등으로만 만물의 영장으로 부른다. 떡검들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 때 사용한 영장(令狀)이 아니라 영묘한 힘을 가진 세상의 우두머리(靈長)라는 것이다. 


조물주는 세상을 다 만든 후에 남자 사람을 지어놓고 어떻게 하나 두고 보니, 하는 짓이 한심하여 마지막으로 여자 사람을 지었다고 여자 사람 왜 만들었을까에 끼적거려두었다.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행복한 원시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시 한심한 짓을 일삼더니 마침내 조물주를 완전히 깔아뭉개버리고만 것이다. 



빛이 환한 대낮은 물론 깜깜한 밤중에도 색안경을 끼고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된 것이다. 세상을 본래의 모습으로 보고 인간을 인간의 모습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삐딱한 시선으로 보거나 인간이 인간을 부려먹는 만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 농경사회를 걷어차면서 오늘날 4차 혁명시대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조물주 최고의 걸작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의 노예를 자처하는 지식의 영장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랄까.. 



다 좋다. 어쩌면 이런 역사 조차 조물주의 간섭으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면, 적당한 때에 하던 짓을 멈추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애플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생전에 "시간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삶을 버리지 마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어디 하나 부족할 게 없을 것처럼 보인 그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던 조물주의 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조물주의 꿈.. 그 속에 전혀 가공되지 않은 대자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색안경을 벗으면.. 알량한 지식을 벗으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풀꽃 한 송이.. 바람과 구름과 뭇새들과 산천초목 모두가 나의 삶을 위한 장식품인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태어난 날.. 축복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유도 다 그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바라본 세상이자 길 위에서 느낀 나의 생각이다.  


La strada per andare a Cochrane, la destinazione nascosta della Patagonia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_Patagonia CILE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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