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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8. 2020

신명 난 파타고니아의 버스 운전자

#7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 덩실덩실 신명 나는 춤을 추는가..?!!



그곳에도 놀기 바쁜 한 녀석이 어머니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까.. 굽이쳐 흐르는 리오 코크랑 강 곁으로 굽이굽이 먼짓길이 이어지면서.. 한 여행자는 당신의 가슴에 남아있는 한을 토해내듯 미루나무가 서 있는 풍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이제 어느덧 나의 차례가 됐다. 어머니께서 애간장을 녹인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미루나무가 서 있는 것이다. 
그 나무는 왜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일까.. 
보고 싶다.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싶으다!


지난 여정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 미루나무가 서 있는 풍경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 어떤 여행자에게는 오래되고 소중한 추억을 끄집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씩.. 어떤 때는 아주 가끔씩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된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명이 끼어든 것이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며 흥에 겨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해.. 이런 느낌은 나뿐만 아니라 어떤 버스 운전자에게도 적용됐다. 이랬지..



신명 난 파타고니아의 버스 운전자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늘 도시를 동경하곤 했다. 아이들은 장차 자기가 살고 있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유학을 가고 싶어 했다. 도시는 그들이 장차 가고 싶은 꿈의 무대였다. 어릴 적부터 매일 봐 왔던 풍경에 대해 자고 나면 보이는 똑같은 일상에 대해 지루함을 느낄 때쯤이면 어디론가 떠나게 된다. 그리고 한두 차례 보다 더 큰 도회지를 다녀온 이후부터 점점 더 고향땅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시도가 잦아진다. 그런 시도는 종국에 꿈에 그리던 도시에 발을 디디게 된다. 파타고니아(Puerto Río Tranquilo)에서 만난 한 여성의 증언이다. 


그녀는 뿌에르또 리오 뜨랑퀼로에서 태어나 꼬이자이께(Coyhaique)를 거쳐 다시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에서 최종 대학교를 졸업했다. 링크된 지도를 참조하면 머나먼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무려 877킬로미터에 이르고 안데스를 넘어 또 다른 루트(회색 표시)를 이용하면 1,356킬로미터에 이른다.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17시간에서부터 19시간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의 길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지도에 표시된 참고자료일 뿐이지, 막상 길을 따라가면 사방이 온통 계곡에 둘러싸였거나 먼짓길은 물론 고갯길 등 험난한 여정이 이어진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꼬자이께에 가면, 뿌에르또 몬뜨에 가면.. 당신이 그토록 꿈꾸어 오던 일이 이루어지고 만족한 삶을 살게 될까.. 



그녀는 학교를 졸업한 후 미련도 없이 당신을 낳아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곳이 뿌에르또 리오 뜨랑퀼로이자 우리가 묵었던 파타고니아 최고의 절경 중에 하나인 까떼드랄 데 마르몰(Catedral de Mármol)이 위치한 곳이다. 그녀는 민박집에서 언니와 함께 민박사업을 하며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도시에서 살 의향이 없느냐고 묻자 즉각 고향에서 살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코크랑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며 그때 만났던 차창 밖의 풍경을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는 그녀에게 어떤 곳이었을까..



그녀가 그토록 꿈꾸었던 그곳은 시골마을보다 사람들이 좀 더 많았으며 새로운 볼거리가 충만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들끓는 곳에서 바라본 쇼윈도 속에는 고향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눈요깃거리들이 빼곡했다. 자동차도 많았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됐다. 그런 도시를 굳이 한국에 비교하면 이름이 알려진 작은 항구도시에 불과한 곳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즉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비로소 당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고향땅이 최고란 걸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며, 비싼 대가를 치른 후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파타고니아 사람들은 여전히 도회지에서 살고 싶은 꿈을 꾸지만, 그럴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도시에서 살던 사람 혹은 먼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보면 외계인 듯 신기해하는 것이다. 그곳도 당신들에게는 별 필요가 없어 보이는 커다란 카메라를 소지하고 무시로 셔터음을 날리고 있는 게 신기해 보인다고나 할까.. 



그들 보시기에 나의 셔터질은 한심할 따름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저기에 찍힐만한 풍경이라도 있단 말인가?" 싶은 것. 그런 한편 그들은 당신들이 '소 닭 보듯' 하는 고향땅을 향해 사진을 찍는 사람이 기특함 이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이다. 마치 6.25 전쟁 직후 헐벗고 굶주리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군이 나타나 초콜릿을 던져주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바위산과 헐벗은 듯한 숲과 쉼 없이 넘쳐흐르는 강물.. 이들은 태어나서 여태까지 봐 왔지만 큰 감동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여행자는 그 풍경을 향해 셔터질 삼매경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사람들의 이런 시선은 버스 운전사도 다르지 않았다. 차 창가에서 운전석 곁으로 다가가 동의를 얻고 차창에 나타난 풍경을 카메라에 담자 운전자의 입이 찢어지며 흥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고향을 사랑하고 장차 (브런치에 소개될지는 몰랐지..^^) 한 여행자의 기록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게 틀림없어 보였던 것이다. 나는 운전사에게 한 술 더 떠 여행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인터넷에 올려두고 세상 사람들에게 공유할 것이라 말했다. 



덩실덩실.. 이때부터 운전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내가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그 순간 덜컹거리던 먼짓길이 잠시 조용해지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속도를 줄인 것이다. 나는 그의 배려를 단박에 알아차리고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그는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좋아했다. 그때부터 셔터음이 들릴 때마다 찢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다. 신명 난 버스 운전자와 신명 난 한 여행자.. 그리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원주민들까지 기분 좋은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을 지겨워하거나 폄훼하고 있지 않나 돌아봐야 할 때가 있다. 맨날 밥만 먹다 보면 스파게티도 짜장면도 가끔씩 그리울 것이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어떤 여성이 고향땅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의 수를 보면서, 헛된 꿈이 무엇인지 일면 그려지기도 한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척박해 보이던 그 땅이 어느 날 천국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파타고니아는 실제로 그런 곳이었다. 5G 최강국이자 지구촌 최고의 문명사회를 일구어낸 대한민국이지만, 좁아터진 땅덩어리 위에서 겪는 고통은 만만치 않다. 특히 토착 왜구 적폐 세력들이 생지랄 발광하는 정치판은 스트레스를 극도로 증폭시킬 것이다. 그때 당신의 고통을 덜어줄 여행지에서 보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그곳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La strada per andare a Cochrane, la destinazione nascosta della Patagonia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_Patagonia CILE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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